느낌있는 뿌리깊은 이야기
빨간 책가방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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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책가방 3
글 아지몽
16
내가 이사한 곳은 기와집이었습니다.
집 앞쪽으로는 신작로가 가로질러 있어서
트럭이며 군용차들이며 버스들이 뽀얀
흙먼지를
뿜고 다니며 방귀를 뀌며 다녔습니다.
길 건너 편에는 낮은 언덕과 골목들로 이어져 있어서
판자집이며 기와집, 그리고
더러 초가집까지
오밀조밀 골목으로 마주하고 있는
낯설지만 나로써는 새로운 풍경들이었습니다.
오후가 되면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골목길로 나와서 몇명씩 무리지어 놀곤 했습니다.
그리고 집 뒷편으로는 푸른 논들이 펼쳐진 들판이 있고
그 들판 사이에
작은 실개천이 흐르고 있어서
아이들은 그 실개천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곤 하였습니다.
그 실개천 옆으로 철로길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기차가 지나갈때마다 덜거덕 덜거덕하고 레일을
타고 굉음을 내는 기차가 요란스럽게 지나갔습니다.
나는 아침마다 골목과
골목으로 이어진 사잇길을 지나
학교에 가곤 했습니다.
새로 전학온 학교는 판자에 검은 색으로
아브라를 입힌 시골학교의 벽과는
아주 다른 튼튼한
콘크리트 건물이었습니다.
다만 교실안에 바닥이 나무로 되어 있어서
청소때마다 기름걸래를 들고
문질러야는 것은 시골학교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직 새로 전학온 학교 분위기에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친구들도 생기게 되고
어룰려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선생님께서 나를 조용히 부르셨습니다.
여선생님이셨는데, 그 선생님은 좀 엄한 표정으로
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몽이야, 너 원길이랑 친하게 지내니?"
무슨 뜻인지 몰라 선생님의 얼굴만 잠시 바라보다
뭔가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표정같기도 하고
뭔가 근심스런 표정인 것도 같아서 그만 고개을 떨구었습니다.
"몽이야, 너 전학온지 얼마 안되서
잘 모를지도 모르는데
원길이랑 가까이 하면 안되, 알았지?
다시 어울려 다니는거 보면 혼난다,
알았어?"
"......."
나는 처음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왜 안된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그 아이와 어울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아이는 우리 동네에 살고 있는 아이였고 그렇게
선생님이
말할만한 이유를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17
동네의 조무라기 아이들은 나이에 큰 차이를 두지 않고
무슨 일이든 함께 즐거움과 고난을 함께 하였습니다.
동네에는 신작로가
있었는데, 신작로는 포장이 되지 않은
당시는 일반국도였는데, 그 당시는 유일한 일번 국도였습니다.
가끔씩 부역나온 사람들이
돌맹이들을 길 가로 쌓아놓았기
때문에 길 가장자리에는 길쭉하게 돌무더기게 쌓여있는
길이었습니다.
하루는 아는 형의 제의에 따라
군용차를 세우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미군 군용차량이었습니다.
경험이 있는 그 형은 그 차를 세우기만 하면
좋은 것들을 얻을 수
있다고 꼭 성공해야만 한다고
우리들에게 절대 대열에서 벗어나지 말라고 엄중한 명령을
했습니다. 그 일은 어떤 일인지는 모르지만 참
흥미있을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미국군용트럭이 멀리서
먼지를 뿜으며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우리 조무라기 아이들은 길을 다
가로막고 서서 손을
흔들어 댔습니다.
"헬로우, 헬로우.....해이 니그로 해이 니그로~~"
달려오던 군용트럭은 서서히
속도를 줄이더니 우리들 앞에서
멈추어 섰습니다. 차가 멈추자 큰 형들 몇몇이 창문으로
기어올라 흑인병사에게 뭐라고
지껄입니다.
"웰컴, 웰컴...깁미 깁미 니깁미 하이 쵸코렛?"
그러자 흑인병사는 화가 난듯 뭐라고 지껄여대고
차에 기어올라간
형들은 차문 안으로 손을 들이 밀더니
우리들에게 뭔가를 몇개 집어 던집니다.
그러고 나서 차에서 뛰어 내리자, 흑인
병사는
"캇땜, 시부렁 시부렁~~~~ "
잔득 화가 나서 입에 개거품을 뭅니다.
차에서 뛰어내린 형들은 오른팔을 쭉 내뻣고
왼손을
쭉뻗은 오른 손 아랬쪽으로 오르락 내리락 하며서
"님미 깁미....아프리카 깜둥이 세수하나 마나..해이
니글로!!!"
같이 화가난 검둥이 병사에게 같이 응수합니다.
그가 트럭 문을 열자 아이들은 일제히 골목길로
줄행랑을 치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은 골목 한구석에 모여서 키득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큰 형이 나를 가르키며
"야, 꼬마 너 이게
뭔지 알어?"
오른쪽 팔을 쭉 뻗고 왼손을 오른팔 밑에 오르락내리락하는
동작을 반복하며 내가 물었습니다.
사실 따라하긴 하였으나
그것이 무슨 뜻인지도 모랐습니다.
내가 대답이 없자 그 형이 일러주었습니다.
"야, 임마. 니 엄마 엿먹어라. 알았냐.
꼬마?"
나는 우수워서 빙글빙글 웃었습니다.
그 검둥이 들이 화낼만한 이유를 알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런데 그 형은 이어서 다시
나에게
"야, 그런데 말이다, 저 니그로들이 얼마나 멍청이냐하면
니그로 니그로 하면 울그락 불그락 어떻게 할지 정신을
못차리거든.
그런데, 웰컴 웰컴 하면서 이렇게 하면 그게 인사인줄 알아.
제들이 말야 이승만 대통령한테 팔을 걷어붙이고
왼팔이
이렇게 하면서 웰컴 웰컴했다가 이승만 대통령이
개망신 당했대쟎아. 그런데 얼마나 환영인사 근사하냐
이승만 똘마니 하나가 있는데 얼마나
거하냐 하면
이승만이가 화장실갔다 나오면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한다는거야. 그러니 그 똘마니들이 보면 얼마나 우습겠냐."
우리
조무라기 악동들은 또 배꼽이 빠져라 웃었습니다.
"야, 근데 이게 뭐냐. 이거 먼저거랑 똑같쟎아.
짜식들, 쵸코렛도 안가지고
다니나."
영어로 뭔가 써있는 네모진 기름덩어리 같은건데
도무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한 아이가 맛을 보다가
"아이,
튀튀.... 비린내..이걸 어케 먹냐?"
생각해 보면 그 기름덩어리들은 마가린이나 치즈같은
것들이었는데, 빠다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우리 조무라기들에게는 단지 돼지에게 주는 밥에
불과했습니다. 쵸코렛이나 사탕같은 것 빼고는 다른 것들은
모두
돼지에게 갔다 주었기 때문입니다.
<계속......>
작가노트 : 60년대 전(戰)후에 학교에서는 폐품수집을 하곤 했습니다.
빈병이며 신문이며 온갖 잡동산이들이 모아지곤 했었습니다.
이 동화는 전후의 소년 소녀의 사랑과 비극을 주제로 다룬 것입니다.
최근 이라크전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전쟁 후의 상처들을
돌아보자는 계기에서 잊혀지고 있는 악몽들을 다시 한번 살려보고자
했습니다. 물론 일부는 제경험이지만 일부분은 창작임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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