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있는 뿌리깊은 이야기
빨간 책가방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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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책가방 2
글 아지몽
11
벌써 3개월이 지났습니다.
그 화사하던 봄꽃들도 어느새 지난 추억으로
지고 말았습니다. 따가운 햇살이 얼굴에 와닿는
초여름으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내가 숨을 쉴 수 없게
기쁜날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오늘 아침 마치 꿈처럼 그 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분명 그 아이자리에
그 소녀 아이가 앉아 있었습니다.
나의 얼굴은 이슬을 만난 햇살처럼 반짝이는
반가움으로 빛나고 있었지만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 아이의 표정은 어디를 보고 있는 건지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얼굴은 약간 붉그레한 반점같은
것이 보였지만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머리에는 전에는 없었던 모자가
쓰여져 있었습니다. 방울 모자였습니다.
하얀 방울모자......
뭐라고 말을 해야할텐데 도무지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의 표정이 내가 도저히 말을 해서는 안되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뭘 생각하고 있는지
슬퍼보이는 표정같기도 하고 마음이 어딘가 다른 나라를
여행하고 있는 듯해서 도무지 말을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여자 아이들 몇몇이 모여 그 아이에게 말을 하고
있었지만 그 아이는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한 참후에 그 소녀 아이의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나 때문이야. 나 때문이야....."
뭐가 자기 때문이란건지 알 수 없지만 그 소녀 아이는
계속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날, 나는 한마디도 그 아이에게 말을 건네지 못했습니다.
12
오늘은 장날입니다.
5일에 한번 정도 이곳에는 장이 섭니다.
아이들에게는 장터만큼 재미있는 곳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장터에는 온갖 물건들이
처음보는 진귀한 것들이 보일때도 있고
더욱 재미있는 것은 등에 북을 지고 걸어다닐때 마다
북을 치는 약장수 구경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약장수들은 꼭 원숭이들을 데리고 다녔는데
그 원숭이에게 옷을 입히고 재주를 넘게 하기도 하고
온갖 재주를 부리게 만들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도
하였습니다. 그 약장수 옆쪽으로 냉차장수가 있었는데
둥근 큰 통속에는 붉은 수박빛 냉차가 아이들의 눈을
자극하기도 하였습니다.
나는 동네 아이들과 함께 그 냉차 리어카가 있는 곳에서
약장수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그 약장수가 입에서 불을 뿜는 묘기를 하고
있었는데, 한 여자 아이가 비명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그곳을 시선을 집중하자 나는 그 곳에 한 소녀아이가
서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한눈에 그 아이가 누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머리에 하얀 모자를 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태약볕 아래였지만 그 아이는 방울이
달린 하얀 방울 모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무서운지 내가 있는 수박냉차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아이와 시선이 마주치자 나는 눈을 어디에
고정시킬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리어카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숙였습니다,
그러자 나는 리어카 손잡이를 따라 몸이 한바뀌 빙 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한쪽 끝을 돌로 괴어놓았던 리어커는
미끄러지기 시작했고 리어카가 내가 잡고 있는 손잡이 쪽이
내려 앉으면서 수박냉차가 담여 있던 통이 그만 내 쪽으로
다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내 주변에 있던 동네 아이 녀석들은 뭔가 큰 일이 벌어진 것을
알았는지 얼른 그 자리에서 집으로 달아나기 시작했고,
순간 잠깐 넋을 놓고 있던 나도 그 자리에 있어서는 뭔가 큰일
날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 아이들이 달아나고 있는 쪽을 향해
같이 뛰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숨이 가쁘게 뛰어 간 곳은 집이었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눈 앞에는 자꾸만 그 아이가 놀라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는 모습만 머리 속에 아른거립니다.
그 날 저녁, 나는 종아리가 시퍼렇게 되도록 매를 맞았습니다.
그 냉차 장사 하루 장사를 망쳐놓은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깨어진 쟁반이며 유리컵들까지 어머니께서 고스란이
아무 말도 못 꺼내고 돈을 물어 주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종아리를 맞으면서도 아프다는 생각보다 그 아이의
놀라는 표정만이 눈 앞에 계속 아른거렸습니다.
13
아우내의 때약볕이 내리는 물가에는
이제 아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물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몸이 추워지면
뚝 위로 올라와 풀섶에 턱을 괴고 동네를
바라보며 놀곤 하였습니다. 좁다란 밭길 사이로
복숭아 나무가 가득하고 그 사잇길에 멀리
파란 교회지붕이 보입니다. 그 길 옆을 따라
미루나무를 쭉 따라가다 보면 학교가 보입니다.
그 옆으로 우리들이 살고 있는 동네가 아기자기하게
지붕을 맞대고 소근대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나의 시선은 항상 그 교회 지붕 아래 조그만
집 한채, 그리고 그 앞에 빈터가 있었는데,
그곳에 내 눈길이 멈추어져 있었습니다.
가끔 그곳에는 검은색 강아지 한마리가 나타나기도
하고 여자 아이 하나가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머리에 하얀 모자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아이가 누군지 한 눈이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턱을 괴고 풀섶에 누워 그 아이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때가 많았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상상을 하며 벌거벗은 모습으로
그 둑방 위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있는 것은 느낌이 들어 위로 올려다 보고
있었는데, 태양볕 때문이 눈이 부셔서 잠시 잘 구분할
수는 없었지만 여자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 아이가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순간 나는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 아이가 누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머리에 쓰고 있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순간적으로 알아 차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몸을 간지롭히고 있었고
그 아이는 계속 나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웃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묘한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멋적은 표정를 짓자 그 아이는 손을 흔들어 보였습니다.
나는 몰래 나쁜짓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어쩔줄 모르고
서있다가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천천히 뚝방 위로 걸어 올라가자 그 아이는 내게 말을
걸었습니다.
"너, 괜쟎아?"
"........"
뭘 괜쟎냐고 물어보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순간적으로 며칠전 장터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그 아이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습니다.
"아~~, 어 괜쟎아. 너는.....?"
그 아이도 뭔가 한참을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었으나
대답대신 좌우로 고개를 저었습니다.
14
내가 뚝방에 걸터 앉았을때 그 아이는 내 옆에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아이들이 물가에서 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 아이 얼굴은 전처럼 밝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뭔가 한참 생각하는 듯 하더니 그 아이가 중얼거립니다.
"삼돌이도 저렇게 재미있게 놀 수 있으면....."
"......"
"내가 그만하라고 했었어....."
"응? 뭐를?"
"그날, 삼돌이가 그걸 가지고 노는 것을 보고....
그만 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에게 이른다고
그만 하라고 했는데.....
그 아이는 계속 그것을 두드리고 있었어."
"......"
"그 아이는 계속 히쭉히죽 웃으면서
내가 말리는 것을 아랑곳 하지 않고.... 재미있다는 듯
계속 그러고 있었어."
"......"
"그래서 선생님에게 얘기하려고 내가 막 교실을 나오고
있었는데.....나오고 있었는데....."
하면서 그 아이는 말을 잇지를 못한채 울먹였습니다.
그 아이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그 아이 얼굴에서는 어느새 눈가에 이슬같은 것이
흘러 내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아이 얼굴에서 웃음을 앗아간 이슬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그 아이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참 바보인가 봅니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그러한 순간에 내가 해주어야할 말이
무엇인지 생각나지 않을리가 없었습니다.
15
짧은 한학기가 지나가고 방학이 되었습니다.
방학 동안 나는 가끔 그 냇가에 가서 놀곤 했지만
어머니 얼굴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벌써 한달이 넘도록 어머니 얼굴을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이 되서야 아버지께서 어머니가
계신곳으로 나를 데려다 주었습니다.
아마도 내가 다른 외지로 나가본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일 때문에 많이 기다려야 된다고
나를 데리고 극장표를 끊어 준다음 끝나고 이곳에서
기다리라고 하고서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극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극장에서 천연색으로 된 영화를 보았는데
공룡백만년인가 하는 영화로 기억됩니다.
내가 사는 곳에는 조그만 문화원이 하나가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어쩌다 한번 흑백으로 된 영화만 보았었는데
총천연색 영화는 너무 실감이 나서 오히려
재미보다 나에게 공포감을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끝내 나는 그 영화를 다 보지 못하고 나와 버렸습니다.
한시간 이상이나 나는 밖에서 낯선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버지를 기다렸습니다.
조금은 겁이 나기도 하고 낯선 외지에서 그렇게 있는 시간이
너무도 힘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황토색 언덕길을 따라 어머니 있는 동네를 향했습니다.
주변에 낮은 판자 담들이 있는 곳을 지나기도 했습니다.
초가집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기와집과 양철지붕들이 많은 곳들을
지나쳐서 골목길을 몇개 걸쳐서 걸었습니다.
내가 도착한 곳은 초가집이었는데, 약간은 변두리 지역 같았습니다.
초가집 문간방이었는데, 어머니께서는 이불 속에 누워 계셨고
뭐라고 반가운 듯 인사를 하였으나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제 곧 나도 나을거야. 괜챦아 질거야.
2학기 부터는 이곳에서 학교에 다니게 될거야."
나는 며칠간 어머니와 함께 그곳에 있다가 그곳에서 얼마 안떨어진
양철집붕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아무런 인사도 없이 그렇게 갑자기 나는
도회지로 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회지로 전학을 온 첫날 밤, 나는 나도 모르게 이불 속에서
혼자 눈시울을 젖시고 있었습니다.
삼돌이 얼굴,그리고 동네 아이들 얼굴.....
그런데 한참을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은
그 소녀 아이 얼굴이었습니다.
"미안해, 인사도 못하고....."
<계속......>
작가노트 : 60년대 전(戰)후에 학교에서는 폐품수집을 하곤 했습니다.
빈병이며 신문이며 온갖 잡동산이들이 모아지곤 했었습니다.
이 동화는 전후의 소년 소녀의 사랑과 비극을 주제로 다룬 것입니다.
최근 이라크전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전쟁 후의 상처들을
돌아보자는 계기에서 잊혀지고 있는 악몽들을 다시 한번 살려보고자
했습니다. 물론 일부는 제경험이지만 일부분은 창작임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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