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있는 뿌리깊은 이야기
빨간 책가방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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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책가방
글 아지몽
사람이 눈부시다는 것을 안 것은 처음입니다.
그 날 나는 빨간 책가방이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입학할 때 예쁜 것을 사주신다고 어머니께서는
아주 빨간 등에 메는 책가방을 사주셨습니다.
아이들이 놀려댈 때도 부러우니까 그렇지 하고
그냥 웃어 넘기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귀여운 미소를 지은 표정으로
그 애는 내 빨간 책가방을 쳐다 보았습니다.
나는 말도 못하고 얼굴에 빨간 장미꽃같은
따끈한 열기가 번져가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눈부신 사람 앞에서는 부끄러운게 많은가 봅니다.
수업 첫날,선생님은 그녀에게 책읽기를 시켰습니다.
책읽는 소리가 어찌나 카랑카랑하고 낭낭한지
교실 안에 환한 백합꽃 몽우리가 마구 피어나는 것만
같았습니다.
생전 조르는 것을 몰랐는 나는 그 날
결국 손에 드는 까만색 가방을 어머니를 졸라
손에 넣고야 말았습니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다 새로 전학온 그 여자 아이 때문입니다.
2
이제 다시 그녀 앞에서는 실수를 하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잘 보일 자신은 없었느니까 그냥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적어도 창피하지는 않는 것이니까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시간은 즐거운 미술시간입니다.
열심히 책가방을 뒤적뒤적 거렸습니다.
"어디갔지."
송판도 있고,못도 있고,망치도 있는데 정작 아름다운 색깔을 가진
털실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시간이,바로 다음 시간이 미술시간인데....어쩌지?"
나는 일어서서 주위를 둘레둘레 쳐다보기도 하고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책상 사이를 왔다갔다 어쩔줄을 몰랐습니다.
갑자기 머리 속에는 그녀 앞에서
선생님에게 혼나는 장면이 스쳐 지나갑니다.
정말 그래서는 안되는데,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아 정말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그녀 앞에서 다시 실수하지 않기로 했는데
정말 큰 일이었습니다.
3
"얘, 너 이거 줄까?"
빨간 털실이었습니다.
내가 빠쳐놓고 왔던 털실......
그녀가 그 털실을, 그것도 빨간 털실을 내게 건냈습니다.
털신을 건내고난 하얀 그녀의 손이 너무 하얗게
백합처럼 예뻐 보입니다.
나는 다시 또 알았습니다. 빨간색은 여자에게서 받는
선물인거라고.....
내가 털실이 없는 것을 아는걸까?
내가 털실이 없어서 안절부절한 모습을 들켜버린걸까?
얼른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어졌습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얼굴이
왜 그렇게 홍당무처럼 변해버렸는지
정말 챙피했습니다.
얼른 수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신이 정신을 가다듬고 얼른 손을 내밀었습니다.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으니까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도 쑥쓰러우니까
그냥 손만 내밀면 해결될 것 같았습니다.
털실을 받아들고 나서 속으로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아니, 그녀는 내가 털실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거야.
이렇게 혼자 위로하면서 겨우 자리를 찾아 앉았습니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푸~하고 내 품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그냥 씩 웃어 주었습니다.
신사는 고맙다는 답례 정도는 해야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도 씩 웃어보였습니다.
4
과수원길 사이로 복사꽃이 화안히 빛나는 봄날입니다.
그녀는 항상 그 과수원길 사이로 나타납니다.
어떤 때는 그녀의 리본이 떨어져 머리 위를 날아 다니는 것을
본 적도 있었습니다. 여러 마리가 떼지어 날아 다닐때는
그 나비들도 꼭 그녀의 리본인 것만 같았습니다.
논두렁길 사이로도 아이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어깨에는 책보를 두르고 손에는 작은 무엇인가가 들려 있습니다.
줄줄이 학교 교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교실에 모여든 아이들은 여느 때나 다름없이
삼삼오오 모여서 웃고 떠들고 시끄럽습니다.
그리고 교실 뒤에는 아이들이 가져은 물건들로 가득 차여갑니다.
오늘은 운동장에 조회가 있는 날입니다
"하나만 남고 모두 나가.
아, 네가 남는 게 좋겠어."
담임 선생님은 씩씩한 남자 선생님입니다.
그때 한 구석에서 아이 하나가 웃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웃는 모습은 언제나 맑아 보였습니다.
바로 삼돌이였습니다.
그 녀석은 정말 재미있는 녀석입니다.
기운도 세고 키도 전봇대처럼 길죽한데,
아이들은 그녀석을 바보 삼돌이라고 부릅니다.
자기보다 힘이 없는 아이들이 발길도 툭툭 차고 다녀도
그 녀석은 히 하고 히죽 웃고 맙니다.
그래서 그 녀석에게는 친구 아닌 친구가 많습니다.
누구나 심심하면 그 녀석과 놀아주니까요.
삼돌이는 오늘 신나는 날입니다.
교실 뒤에 모아놓은 많은 잡동산이 물건들이
삼돌이를 즐겁게 만들었습니다.
그저 신기한지 한 참을 정신없이 만지작 거리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그 녀석이 교실에 남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
다른 아이들은 운동장으로 우 몰려 나갔습니다.
5
운동장은 재잘재잘 시끌벅쩍.....
항상 그렇지만 선생님이 대열을 정렬하기 위해
목청껏 소리를 지르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잠시 후,교장 선생님이 단에 오르고 몇번 안경을
만지작거리더니 근엄한 목소리도 평상시 처럼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애~~~"
버릇처럼 뭔가 다음 말을 꺼내기 전에 항상 하던
그 말투에 아이들은 또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합니다.
잠깐 침묵이 흐른 뒤 또 "애~~"하는 말이 이어질 무렵,
나는 잠깐 뒤를 돌아 보았습니다.
그녀가 눈에 띄질 않았습니다.
"이상하다, 어딜 갔을까?"
눈치를 보아가면 뒤를 둘러 보았지만 정말 그애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뻥"하는 폭음과 함께 눈 앞 교실 지붕과 창에서
뿌연 먼지 바람이 구름처럼 몽실몽실 새어 나왔습니다.
갑자기 운동장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줄달음쳐 연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교실쪽으로 부산히 달려갔고
아이들도 우르르 교실쪽으로 몰려 갔습니다.
선생님들은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막았지만
그러한 광경을 처음보는 아이들은 놀라움과 호기심으로
그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생전 처음보는
이 놀라운 광경들을 놓칠새라 이미 그 교실 주위를 둘러쌓고
있었습니다.
6
깨어진 창문 유리 사이로 안개 같은 먼지들이
꾸역꾸역 기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웅성웅성 아이들이 선생님의 호령에 이리저리
몰리고 뭔가 큰 일이 벌어졌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마저 마저,그 게 터진거야."
"아침에 진짜라고 그랬어."
"그럼,그게 폭탄이란 말야?"
철수가 수남이에게 속삭였습니다.
그런데 그녀갸 보이질 않았습니다.
정말 큰 일입니다. 그녀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녀를 찾기 위해 아이들을 헤치고 또 헤쳐가며
정신없이 헤매었지만, 그 아이는 보이질 않았습니다.
순간 다리에는 전기를 쏘인 것처럼
힘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가슴이 놀라서 뛰기 시작했습니다.
"서~~ㄴ생님...없어요."
"뭐가?"
"전학 온.....그..얘요."
"뭐라고?" 하시더니
선생님은 꾸역꾸역 나오는 먼지 사이를 뚫고
교실쪽으로로 뛰어들어 갔습니다.
"이 선생! 이선생!" 한쪽에서는 다른 선생님들이
우리 선생님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7
잠시 후 선생님은 가슴에 뭔가 하얀것을 안고
먼지 구름 사이를 뚫고 나왔습니다.
왼쪽으로 까만 것은 머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 위에 하얀 나비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분명 하얀 나비였습니다.
나는 그만 그 자리에서 굳어져서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털석 주저 앉고 말았습니다.
뭔가 모를 덩어리가 가슴을 타고 올라오고
이내 눈덩이를 뜨겁게 밀어 올리면서
눈에는 핑하고 액체가 고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괜쟎을거야, 괜쟎을거야."
선생님은 계속 아이들이 걱정을 하는 것을
아는지 혼자 중얼중얼하면서 잠시 잠자는
하얀 나비를 안고 있습니다.
검은 먼지를 가득 뒤짚어쓰고 나온 선생님의 얼굴은
땀과 검은 연기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계속 중얼중얼 아이들을 향해 외쳤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애~~앵....애~~~앵 삐카 삐카."
하얀 엠브란스 구급차가 왔습니다.
차에선 하얀 까운을 입은 사람들이 들것을 들고 내렸고
그 소녀 아이는 그 들 것에 실려 차에 실렸습니다.
아이들이 웅성웅성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서...선생님, 삼돌이요....바보 삼돌이요."
8
연기 구름이 어느 정도 거치고 나자
교실 안은 까맣게 그을린 자국들과 포얀 안개 먼지가
덮인 물건들이 들어났습니다.
그 안에는 사람의 흔적이라곤 없었습니다.
뭔가를 찾아내기 위해서 모두 그곳을 응시하고 있지만
삼돌이가 살아 있는 흔적이라곤 도무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삼돌이, 삼돌이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 때 누군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선생님 저, 저기요."
찢어진 하얀색 옷들이 조각 조각 책상사이에 붙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옷조각에 선명하게 붙어있는 붉은 빛깔들,
처음보는 기괴한 빨간 조각 무늬들.....
칠판과 게시판에도 그 조각들은
마치 모자이크 조각을 붙인듯 듬성등성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정말 큼찍한 광경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선생님들이 외치는 소리로 여기저기 몰려 다니다가
다시 운동장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나는 몰래 달음질쳐 기숙사 뒷편으로 돌아갔습니다.
조각조각 붙어있는 그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나를 전률하게 했고 그리고 다리가 몹시 떨려왔습니다.
나는 기숙사 뒷편에 몰래 허리를 숙이고
교실 안을 바라 보았습니다.
얼마 후, 한 선생님이 나무 젓가락을 가지고 와서
조그만 상자에 그 붉은 조각들을 주워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것이 분명 삼돌이가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사람이 저렇게 될 수는 없는 것이라고.....
9
그런 일이 있는 며칠 간 학교를 가지 못했습니다.
며칠 간 나는 너무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
눈 앞에 자꾸 멀어져가는 구급차가 아른아른 거립니다.
학교에 가지 못한 아이들은 몇몇이 모여
조그만 내가 흐르는 둑방길을 뛰어 다니며 놀았습니다.
하늘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하얀 구름이 손을 흔들고
파란 빛깔이 눈이 시릴 정도로 눈부십니다.
미루나무 사이에서 명랑한 소리로 울어대는 종다리가
들판 숲으로 날아갑니다.
과수원길 사이에는 복사꽃이 여전히 화사합니다.
그 길 사이로 파란 지붕이 보이고
과수원길 사이로 교회 십자가가 보입니다.
그 집 마당에는 강아지 한마리가 졸고 있고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실은 그곳에서 나는 누군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 소녀 아이를 찾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그 아이의 얼굴이 눈 앞에서 아른거립니다.
나는 이제 그 아이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10
밤입니다. 호롱불이 졸고 있습니다.
나는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어두운 불빛 속에 까만 가방 하나가
보입니다. 가방입니다. 그 아이 때문에 엄마를 졸라 샀던
가방입니다. 빨간 가방은 남자가 갖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했던 그 아이 때문에 사달라고 졸랐던....
까만 가방 속에서 그 소녀 아이의 미소짓는 얼굴이
비쳐옵니다. 머리 위에 하얀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것도 보입니다.
과수원의 복사꽃이 화사한 길을 따라 사뿐사뿐 뛰어가는
그 아이의 모습이 천사처럼 날아 다가와서 나는 나도 모르게
어느새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교실이 떠올랐습니다.
뿌연 연기가 꾸역꾸역 나오는 잿빛 어둠을 뚫고
뻘겋게 상기된 표정으로 그 소녀 아이를 안고 나오는 선생님의 모습이
다시 눈 앞에 아른거렸습니다.
그리고 키큰 바보 삼돌이. 멋적게 씩웃는 삼돌이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바보 삼돌이.....
물자를 알껴야 한다며 가지고 왔던 수많은 잡동산이 물건들이
그렇게 순식간에 삼돌이를 무섭게 삼켜갈 줄은 몰랐습니다.
물건은 그런 건가 봅니다. 물건이 이토록 무섭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나는 온몸이 또 한번 떨려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무서운 일입니다.
아마도 쉽게 잠이 올거 같지 않습니다.
작가노트 : 60년대 전(戰)후에 학교에서는 폐품수집을 하곤 했습니다.
빈병이며 신문이며 온갖 잡동산이들이 모아지곤 했었습니다.
이 동화는 전후의 소년 소녀의 사랑과 비극을 주제로 다룬 것입니다.
최근 이라크전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전쟁 후의 상처들을
돌아보자는 계기에서 잊혀지고 있는 악몽들을 다시 한번 살려보고자
했습니다. 물론 일부는 제경험이지만 일부분을 창작임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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