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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Room

빨간 책가방4

AziMong 2004. 7. 4. 10:16
 

러브테마 ||||||

아지몽이 만드는 어른을 위한 동화 |||||||


                         빨간 책가방 4

 

                                                                                    글 아지몽


 


 

    18

     

    어린시절 우리들의 무대는 시골과 도시의 풍경이
    함께 어우러지는 넉넉한 공간이었다.
    나를 아껴주는 형은 나이 차이가 많았지만 나를 항상
    반겨주었다. 하루는 그 형집에 놀러갔는데,
    한쪽 구석에 책상 위에 쌓여있는 많은 책에 시선을 빼앗겨 버렸다.
    사실은 나는 중학교 3학년이 되서야 나만의 책상을 소유하게
    되었었다. 초등학교, 그 당시는 국민학교라고 불렀는데
    아마도 어느 집을 찾아가도 책상이라는 것은 구경하기 힘들 정도였다.
    내가 처음 많은 책을 접한 것은 외가집이었는데 선반 위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전집과 같은 책들이었다.
    그것은 그마나 큰 외삼촌이 을유문화사라는 출판사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만한 책들이 있었던 거라 생각된다.
    그 당시 시골에서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온 삼촌은
    장손으로써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혜택을 받은 선택받은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10남매에 아들이 둘이었는데
    학교 다니면서 선생님이 물어보실때 제일 난감했던 것이
    그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이모가 일곱이라고 하면 다 눈이
    휘둥그레졌었다. 그 십남매 중에 장남에 장손이었으니
    외할머니의 아들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던 것 같았다.
    어쨋든 그 유식한 큰삼촌 덕택에 외가에 갈때마다
    나는 깨알같은 많은 책들을 읽은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그 당시에 나온 책들은 한결같이 깨알같은 글씨가 세로로 되어
    있어 읽기가 좀 불편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책 속에 펼쳐지는 새로운
    흥미로운 광경들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국민학교 일,이학년 시절에 나는 몇십권으로 되어 있는
    <서유기> 및 대원군이 나오는 <운영궁의 봄>인가하는
    어려운 책들을 다 읽어 내려갔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런데, 그 형의 집 책상 위에 그러한 책들이 있었다.
    시리즈, 사실은 월간지였는데 그 당시 나는 월간지니 주간지니 하는
    개념이 없었다. 단지 그 책 속에는 중간중간 재미있는 만화가
    삽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책을 처음 접하는 나는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그 형의 누나 아마 고등학교를 졸업한 정도의
    나이였는데 그 누나를 졸라서 책을 빌려다 보았다.
    이 삼일도 안되어 그 책장 위에 쌓인 책들을 거의 다 훑어 보았다.
    몇권씩 빌려가고 그 다음날 책을 가져와서 또 몇권을 빌려달라 했으니
    그 누나도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몽아, 너 그 책이 그렇게 재미있니?
    그 책, 다 읽은거야?"
    "......."
    사실은 다 읽지는 않았지만 흥미있는 이야기는 거의 다 읽었었다.
    그 중에 만화는 빠치지 않고 다 보았다.
    도시로 이사하면서 달라진 것 중에 하나가 새로운 책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는 거였다.
    학교에서 다달이 나오는 어깨동무는 가장 먼저 가서 가져왔고
    동네 아이들이 여러가지 만화들을 시리지로 엮어서 매달 발간되는
    월간책자들은 빼놓지 않고 읽을 정도였다.
    아마도 그만큼 책이 흔하지 않은 탓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 형은 나보다 세살 정도 위였는데,
    그 형의 누나가 책을 좋아해서 그런지
    학교에서 시험을 볼때면 전교에서 일등 자리는 결코 누구에게
    내어주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단언하건데 그 형은 요즘 말하는 공부벌레는 아니었다.
    항상 우리들과 함께 어울렸고 모든 일을 우리들과 함께 계획했다.


     

    19

     

    하루는 그 형과 몇몇 조무라기 아이들이 새로운 정보를 입수했다.
    천안역 위 쪽에 고속버스 정류장이 서는데 정류장을 짓기 위해 그곳에
    부지를 다 갈아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아이가 그곳에서
    심주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함께 의논을 하고 각기 조그만
    연장, 호미나 곡갱이 같은 것들은 준비해서 그곳에 모였다.
    우리들은 땅을 파기 시작했다.
    잠시후 우리 조무라기들의 얼굴에는 기쁨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야, 여기도 있어!!!"
    심주, 정말 심주가 있었다. 심주는 탄피나 포탄의 조각들을 일컫는 것이었다.
    예전에 그곳이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들은 그곳에서
    구리조각같은 노란 심주조각들을 발견했고,

    그것을 가득 모아서 고물상으로 갔다.
    우리 조무라기 악동들의 얼굴에는 하루종일 싱글벙글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우리들은 그것으로 십원짜리 지폐 몇장과 1원짜리 동전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것을 어떻게 써야할지 또 서로 의논했다.
    물론 일부는 하얀 박하사탕과 십리사탕, 그리고 아이스께끼를 사먹었지만
    아직도 지폐가 많이 남아 있었다. 아이스께끼는 오원 정도 사탕은
    일원이나 이원정도 되었는데 입안에서 화한 맛이 풍기는 박하사탕과
    오랫동안 입에 넣고 즐길 수 있는 십리사탕은 우리들에게
    그야말로 유일한 맛거리였다.
    그 해 여름 우리들이 공모한 것은 그 돈으로 아이스께끼 장사를 하는
    것이었다. 아이스께끼를 만드는 곳이 두 세곳 정도 있었는데
    천안역 근처에 그당시 제과점이나 무슨무슨 당으로 되어 있는 곳은
    빵과 아이스께끼를 만드는 곳이었다. 그 중에 천안에 제일 명물인
    호두과자로 자리한 태극당이 있었는데, 지금 가장 알려진 학화라는
    곳은 그 후 몇년 뒤에 생긴 것이었다.
    학교 끝나고 나서 몇몇이 몰려 다니며 아이스께끼 통을 짊어지고
    다녔다. 파란 아이스박스로 된 통 속을 어깨에 메고 다니면서
    그것이 다 녹기 전에 다 팔아야 하는 것이다.
    역근처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고, 생각보다 파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 중에 어떤 아이는 학교 끝나자 마자 딱새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조그만 통하나 가지고 다니며
    "딱~~, 딱~~~ ,구두 딱~~ ! "
    하고 돌아다니면서 그야말로 얼굴에는 일부러 묻힌 것 아니겠지만
    검은 구두약 자국을 일자로 몇개 그어놓고 다니면서 돈을 벌었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어떤 이유가 있어서
    그러한 일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 나가는
    우리 조무라기 아이들의 작은 천국이요 세계였던 것이다.
    그런데 일은 바로 그 다음날 벌어졌다.


     

    20

     

    "몽이, 너 끝나고 교무실로 와!"
    선생님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또 뭐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영 생각해 낼수가 없다.
    도대체 뭘까?
    가슴이 떨리고 두근거렸다. 뭔지 모르지만 조심스럽게
    교무실 문을 열고 담임 선생님 앞에 갔다.
    두 손을 앞으로 하고 처분을 기다릴 수 밖에.....
    "너 왜, 선생님 말 안 들어?"
    "......."
    "너 나쁜얘들과 어울리지 말랬지?"
    "......."
    "선생님에게 맞을래?"
    "저~~ 왜 안되는데요?"
    "선생님이 다 봤어."
    "뭘요?"
    "아이스께끼 통 들고 다니고......"
    "......"
    "원길이랑 구두통 들고 다니며 시내 돌아다니는거....."
    "......"
    "처음부터 말했지. 그런 아이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그래도 나쁜짓을 안했어요."
    "너, 지금 댓구하는거야!"
    "......."
    "종아리 걷어!"
    "뭘 잘못했는데요?"
    "너 선생님 말 안들었쟎아."
    "......"
    그 날 나는 종아리가 빨갛게 붇도록 종아리를 맞았다.
    그 날 나는 종아리를 맞고 서러워서 집에와서
    엄청 눈물을 쏟았다.
    그런데 그러고나자 갑자기 시골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시골학교 있을때는 이런 일은 없었는데.....
    그 여자 계집아이 얼굴이 떠올랐다.
    아우내 둑방에 앉아서 여름에도 하얀 방울모자를 쓰고
    가수원길 사이에서 바라보이는 마당에서 뛰어 놀고 있는
    그 계집아이 얼굴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국민학교 때 맞은 것은 두번으로 나는 기억을 한다.
    그 때 그 여생님에게 맞은일, 그리고 사학년이 되어서
    교실에서 무심코 옷을 털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깨를 누군가에게
    끌려가는가 쉽더니 눈에서 불똥이 터져서 앞이 깜깜해졌다.
    잠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 앞에 선생님이 서 계셨다.
    나는 영문을 모르고 있다가 한참 지나서야  상황를 깨달았다.
    교실에서 옷을 털었다는 이유였다.
    실과시간이면 하기 싫은 사역을 해야했었다. 학교 울타리 바로
    앞에 밭이 있었는데, 그 밭에 풀을 뽑아주고 호미로 땅를
    일구어야 했던 일인데 정말로 하기 싫은 일이었다.
    때약볕 아래서 땀을 흘리는 것도 그렇지만 그 일을 하고 나면
    흙먼지가 옷가 잔득 묻기 때문이기도 했다.

    누구를 위해서 하는 일인지도 몰랐다, 왜 밭에서 일을 해야 하는지....
    그 날 옷에 묻은 흙먼지를 나는 무의식적으로 교실에서
    무심히 털고 있는 터였다.

작가노트 : 60년대 전(戰)후에 학교에서는 폐품수집을 하곤 했습니다.

        빈병이며 신문이며 온갖 잡동산이들이 모아지곤 했었습니다.

        이 동화는 전후의 소년 소녀의 사랑과 비극을 주제로 다룬 것입니다.

        최근 이라크전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전쟁 후의 상처들을

        돌아보자는 계기에서 잊혀지고 있는 악몽들을 다시 한번 살려보고자

        했습니다. 물론 일부는 제경험이지만 일부분은 창작임을 밝혀 둡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도 영화 브룩크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와는

        다르겠지만, 비슷한 배경으로 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어른들은 그러한 상황을 어른들의 상황에서 인식을 하고

        힘들어 하지만, 아이들은 단지 자신의 세계 속에 펼쳐지는

        흥미로운 이야기 거리라는 점이다. 그것이 어른들과 아이들의

        다른 점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 아름다운 정경들을 둘러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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