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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고전)

에바페론

AziMong 2007. 4. 18. 21:12
"20세기 들어 인류는 여러명의 여자 대통령 및 여자 수상을 탄생시켰지만
단지 대통령 부인에 불과했던 이 여인을 능가한 사람은 아직도 없다"

이처럼 엄청난 찬사를 받는 여인은 과연 누굴까?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했고,
14살에 가출하여 도시의 술집에서 댄서로 일하며 끼니를 때웠고,
이 남자 저 남자 전전하던 중 점 찍었던 홀애비를 물어,
마침내 대통령 부인의 지위에 까지 오른...........
"에바 페론"
우리에게 "에비타"의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뇨자임다.

시골 촌닭이 아르헨티나의 대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출했으나
가방 끈 짧고, 지갑 텅빈 미모의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뭐 있겠슴까?
가장 안전하고도 확실한 방법은 남성 후원자를 찾는 것.
그녀는 필요에 따라 이 남자 저 남자와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소원인 단역배우의 꿈을 차근차근 밟아 나갔슴다.

그러는 한편 좀 더 굵직한 구찌를 물기 위해서
유명인사나 거물급 정치인들의 단골 룸싸롱에 취직해서 기회를 엿 보았슴다.
당시나 지금이나 무명연예인이 스타가 되기 위해 사용하는 주문....
"돈을 드릴까요? 몸을 드릴까요?"
그녀는 주저없이 온 몸을 아낌없이 던진 덕에 슬슬 방송을 타기 시작함다.

이 여자 "에바"와 그 남자 "후안 페론"의 첫 만남은 1943년에 이루어짐다.
방송국 주최 파티에서 만난 두 사람은 금방 가까워졌는데
이때 그녀의 나이 24살, 후안 페론의 나이 48살....
이 늙수구레한 홀애비가 다름아닌 군부 쿠데타 세력의 리더임을 안 그녀는
곧 바로 동거에 들어가 후안 페론의 넋을 쏙 빼놓는데 성공함다.

비록 가방끈은 짧았지만 타고난 정치적 감각을 가진 그녀는
정부(情夫) 페론의 정치적출세를 위해 그야말로 헌신을 다함다.
페론의 승승장구는..... 부통령, 육군장관 겸 노동장관으로 계속되고
이윽고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를 본뜬 "페론주의"를 내세우며
1945년에 대통령에 출마하지만 반대파들에게 연금당하는 처지가 됨다.

이때부터 에바의 빛나는 내조가 전개됨다.
군부의 힘 못지않게 노동자의 힘이 막강함을 안 그녀...
공장지대와 부두를 연일 돌아다니며 페론의 지지를 호소함다.

그녀는 아주 보기드문 선동 연설가였슴다.
자신이 생생하게 겪었던 지배계급에 대한 분노를 화산처럼 비판하는가 하면
노동자들의 아내나 어머니처럼 느껴지게 하는 소박한 말씨로 감동을 주었슴다.
에바의 대중연설이 시작된지 불과 열흘 뒤
그녀의 연설에 감동받은 50만의 노동자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페론!! 에바!!" 를 연호하며 시위하자 페론은 석방됨다.

페론과 에바는 결혼식을 올리고 이듬해에 페론은 대통령에 출마함다.
선거유세기간 동안 그녀가 보여준 활약은 실로 경이에 가깝슴다.
노동자들이 그녀에게 보여준 애정과 지지의 표시는 광적이었으며
그 덕에 페론은 압도적 승리를 거두고 대통령에 당선되죠.

첫 집권 5년 동안 노동자들의 수입은 두배나 올랐슴다.
오두막 대신 안락한 집을, 콩 대신 스테이크를,
벽만 보며 밤을 보내는 대신 영화를 볼 수 있게 됐슴다.
부유층들은 피똥을 쌌지만 노동자들에게는 희망이 넘쳤슴다.

부유층들은 그녀를 촌뜨기, 매춘부, 창녀라고 불렀으며.
영부인이 됐음에도 세련되지 못한 말투와 행동을 조소했슴다.
여기에 열받은 그녀는 자신의 우상화에 착수하는 잘못을 저지름다.

그녀의 과거를 깊이 아는 사람들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그녀의 초상화 앞에서 모자를 벗지 않는 사람이 3년형에 처해지고,
그녀 선전영화 상영 때 기침했다는 이유로 사관생도 20명이 퇴교당함다.

초등학교 1학년 이상은 매주 대통령 부부 찬양 글짓기를 해야 하고,
고학년은 날조된 그녀의 자서전을 의무교육으로 배워야 하고,
그녀를 멸시하는 사람은 영장없이 체포되는가 하면,
그녀의 기사나 사진을 적게 싣는 신문사는 페간 됐슴다.

또한 정부 요직도 그녀 마음먹은 대로 조종함다.
아파트 문지기를 총노동연맹 회장에 앉히고,
그녀의 오빠를 대통령 비서실장에, 노동자를 노동장관에 앉힘다.
외무장관은 UN에서 그녀보다 유명해졌기 때문에 파면당했고,
신임장관은 취임 파티에서 그녀 커피 심부름을 해야 했슴다.

그럼에도 그녀가 하층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을수 있었던 것은
에바 자신이 불우했던 과거를 잊지않고, 그들의 짐을 덜어주려 노력한 때문임다.
그녀의 사무실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그녀를 기다렸고,
그녀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환한 웃음으로 성심껏 돌봐 주었슴다.
페론은 노동자와 여성이라는 두 축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았는데
이 정책에 에바는 자신의 경험과 애정을 송두리째 쏟았은 검다.

그녀가 간여했던 정책중 일례를 들어 본다면......
이상적인 여성법을 제정해서 아르헨 여성들로 하여금
당시 지구상에서 가장 훌륭한 지위를 누리게 해 줬슴다.
또한 기업에 압력을 가해 모금한 기금으로 에바재단을 설립,
정부예산보다 더 많은 기금으로 여성과 노동자들의 복지에 사용했슴다.
빈민층과 여성들에게 그녀는 성녀였고 우상이었던 검다.

1952년 에바페론은 숨을 거둠다........겨우 33살.
자궁, 가슴, 간, 허파까지 무섭게 퍼진 암 때문였죠.
헌신적인 그녀는 병을 알면서도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국민을 위한 라디오 연설을 하고,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냈슴다.

그녀의 급작스런 사망 비보가 전해지자
아르헨티나는 핵폭격 공습을 맞은 듯한 패닉 상태에 빠졌슴다.
온 국민들이 일손을 놓은채 거리로 나와 넋 나간듯 오열했고
국정이 마비될 정도의 충격이 나라를 휩쓸었슴다.

페론이 시행한 당시의 눈부신 정책을 후세가들은 "페로니즘"이라 함다만
페로니즘의 신화 .......그 상징적 존재는 바로 에바였으며
에바는 페로니즘의 정신적 실질적 산파이기도 했던 검다.
그녀가 남긴 유언장의 끝부분을 보면
국민들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알 수 있슴다.

"끝으로 ....제가 만일 국민여러분께 잘못을 저질렀다면
제가 사랑으로써 그렇게 했다는 사실을 이해해주기 바라며.....
.....저의 마지막 말은 처음과 똑같습니다.
저는 페론과 국민들과 영원히 함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지 50년이 다 돼가지만
국민들의 마음속에 그녀는 영원히 살아 숨쉬고 있슴다.
그녀를 성녀로 추앙하고 있는 많은 아르헨티나인들은
아직도 이렇게 외침다.

"결코 에바 페론이 죽었다고 말하지 말라"


**추가 사리**

그녀 사후 나라가 수습키 어려운 혼란에 빠지자
페론은 강경책을 남발하다가 군부의 반발로 55년도에 망명길에 오른다.
에바 추종세력의 부활을 두려워한 신군부 세력은
에바의 시신을 비밀리에 꺼내 이탈리아 어딘가로 빼돌린다.

에바의 무덤이 발견된 때는 1971년.
그녀의 시신은 스페인에 망명중이던 페론에게 보내졌다.
페론의 세번째 부인 "이사벨"은 에바의 영혼을 받기위해
온 몸으로 에바의 관을 감싸안았다고 한다.

페론은 1973년 에바의 후광을 얻어 다시 대통령이 되었으나
열달도 못가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게 되고
부인 "이사벨"이 세계최초로 여자 대통령에 오르지만
21개월만에 군부 쿠데타로 물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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