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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Room

산길

AziMong 2004. 9. 20. 02:46

 

산길

 

               글 아지몽

 

한 아이가 산길을 걸어 갑니다.
한 아이가 꼬부랑 할머니를 따라
꼬불꼬불 산길을 걸어 갑니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산길
수북히 돌들이 쌓인 모퉁이에서
할머니는 돌 몇개를 주어 돌무더기에 던집니다.
아이는 알고 있습니다.
말을 하진 않았지만
그것이 누군가의 슬픈 영혼이라는 것을.
할머니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돌들이 입을 다물고
그 많은 시간을 견디어 왔노라 했습니다.
그렇듯 아이도 이제는
돌처럼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월은 그렇게 많은 것들을 입을 다물게 하였습니다.
우리들이 살아온 날들을
사랑도 애증도 품었던 한(恨)도
이렇게 돌처럼 입을 다물고 가야한다는 것을.
그 아이는 그 길을 다시 갈 수 없었습니다.
다시 돌아서 갈 수 없었습니다.
아이의 마음 속에는 시간이란 길을 따라
할머니가 앞서 가고 있었지만
이제 더 이상 그 할머니를 볼 수 없습니다.
그 아이가 걸음을 멈추자
어둠을 몰고온 구름이 슬픈 얼굴 표정을 짓다가
끝내 아이의 옷을 다 젖시고 말았습니다.
아이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그 옷을 입고 산길을 걸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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