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있는 뿌리깊은 이야기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들의 슬픈 기억 본문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들의 슬픈 기억
글 아지몽
누구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두운 날들이 있다.
밝음 속에서는 어둠은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다.
아마도 우리들은 그러한 이유로 어려움을 잊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12월 몹시 바람이 추운 겨울 날이라고 생각된다.
독서실 한 모퉁이, 겨울이 시작된지도 한참이나 되었을텐테
독서실에는 아직 난로 하나 보이지 않는다.
거리에서 시달린 몸을 좀 추스려보려고 책상에 업드려 보지만
야속하게 추위가 잠을 자꾸만 쫓아버린다.
그러던 어느날, 사회에서 처음 알게된 친구녀석이 찾아왔다.
"너, 담요하나 없이 지내는구나?"
그 녀석은 집에서 담요 하나를 가져다 주었다.
어떻게 그 겨울이 지나갔는지 어떻게 그 녀석과
헤어졌는도 모른다. 그 만큼 그 당시 나는
생존에 절박해 있는 시절이었다.
기술학원 기사들 식사보조에다, 월부책장사에,
월부드라이기 장사에,보험세일즈맨에 .....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다 하고 다녔지만,
내 젊은 시절은 그러한 방황의 한 여로에 불과했다.
그 녀석은 그러한 나를 어쩌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믿었었는지도 모른다.
그 녀석이 여자 친구랍시고 소개시켜준다고 갑작스럽게
불러낸 그 자리에, 나는 그러한 시간을 즐길만큼의 조그만
낭만의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는 시절이었다.
그 날 나는 그녀가 내 주머니 사정을 눈치챘음인지 그녀의 동의하에
무심코 그녀에게 짜장면을 사주고 말았다.
그 당시 겨우 죽음의 탈출구에서 빠져나온 나의 삶은
바람에 부딪치고 힘없이 날으는 보잘 것 없는
연약한 나비의 몸짓에 불과했으니, 그는 그러한 나를
여자와의 첫만남에 짜장면을 사주는, 여자 하나 다룰 줄 모르는
촌놈으로 놀렸음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인생은 참 아이러니 하다.
그 후 몇년후 내가 찾아가 만난 그 녀석은
그 녀석이 소개한 여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 여자는 다름아닌 그 녀석의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이었던 것이다.
성공을 하는데 있어서나 사랑을 하는데 있어서도
하나하나 계단을 밟아 살아가고 싶다는 그 녀석은
군에 가버리고 나는 문학공부를 위해 진학하기로 결심했고
다시 대학입시공부를 혼자 준비하고 있었다.
그 녀석은 그러한 나에게 마지막 부탁을 했다.
너라면 쓸 수 있는게 있을거라며 축시를 하나 써달라고 했다.
그 해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나는 편지 한통을 받았다.
"친구, 내 사랑하는 동생, 그 애가 결혼을 했다네.
자네가 보내준 글, 그 자리에 참석할 수 없는 내가 대신 보냈다네.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하네....."
이것이 그 녀석이 나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였다.
혹자는 모른다, 누군가 자신의 어둠을 이야기 하지 않는한,
그 어둠의 무게기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그랬다. 그 시절 나의 낭만은 너무도 초라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