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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의 육담 <19> - 쥐구멍 본문
강원의 육담 <19> - 쥐구멍
한 남자가 마누라를 끌고 고을 사또한테 가서 "내 마누라가 서방질을 해 같이 못 살겠습니다." 하며 분을 참지 못하자, 사또가 "왜 남편을 두고 서방질하느냐?"고 다그치니, 부인은 태연하게 "내게 달린 걸 좀 빌려 달라고 해서 잠깐 빌려 줬는데 무슨 상관입니까?" 하고 대드니, 사또는 판결을 잘못했다간 큰일나겠기에 궁리하다가 측간으로 갔네.
측간에서 가서 부인에게 "이게 무슨 구멍이냐?" 물으니 "쥐구멍입니다." 하니, 사또는 "저 구멍이 담벼락에 붙어 있으니 담구멍이라 해야지 왜 쥐구멍이라 하느냐? 이렇듯 암만 너한테 붙었다 하더라도 네 것이 아니고, 맨 처음 너한테 들락날락한 사람 것이니 그한테 절대 권한이 있다. 그러니 네 맘대로 하면 안 된다." 이러 타이르더래. (자료제공 ; 강릉민속문화연구소)
조선 시대 얘기 같은데, 그 대단한 엄숙주의의 한 시절에도 사람 사는 양식이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알겠도다. 찾아보면 이 육담뿐 아니라 엄청난 양의 서방질 현장이 목격된다.
우선 조선 성종 17년에 덕성군의 후처 구씨가 언니의 아들 이인언과 간통한 사건을 보자. "내(이인언)가 허벅지에 종기가 나서 누워 있는데, 구씨가 아픈 곳을 묻고 종기를 문지르며 음욕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튿날 또 와서 종기를 만지다가 드디어 음근을 만지기에 내가 발로 찼습니다. 그 뒤 병이 나은 어느 날 밤중에 구씨가 나를 불러 침방으로 끌고 가더니 '내가 어우동이 되어 죽더라도 정욕을 참을 수 없다.'며 간음을 했습니다. 그 뒤로는 틈을 타서 간음했는데 하루는 구씨가 '오랫동안 월경이 없으니 임신된 것 같다' 하므로…." 이 기막힌 내용은 그 근엄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돼 있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 서방질의 일인자를 꼽으라면 역시 바로 여기 구씨가 말한 어우동이다. 희대의 색녀 어우동은 사회 전반이 점차 붉어져 가는 성종 후대에 실존했던 사대부가의 여인인데, 한 때 성종과도 유흥을 즐겼다는 풍문이 도는 높은 계층의 여자다. 승문원 지사 박윤창의 딸 어우동은 종실 명문가로 시집갔으나 마음에 드는 사내와는 그 자리에서 즉시 본능적 행동을 했고, 특히 근친상간도 마다하지 않는 펄펄 끓는 여자였다. 팔촌 시아주버니인 정종의 고손자 기(驥)와 간통했고, 육촌 시아주버니인 세종대왕의 손자 난(蘭)과도 통정했다. 관계한 남자 중 특히 마음에 드는 사람의 몸에 먹물로 문신하기를 강요했는데, 전의감 생도 박강창은 팔뚝에, 서리 감의동은 등판에다 '어우동'이란 이름을 새겨 넣게 된다. 병조판서 어유소와 직제학 노공필도 어우동과 관계해 신세를 망쳤다.
기왕 나온 김에 옛 서방질 사건을 더 살펴보자. 정종 때 과부 이씨가 서방질하다 들키자 "간통한 것이 나뿐만이 아니고 이원경의 처 권씨도 같습니다." 하고 물귀신 작전을 썼다. 잡아 다그쳐 보니, 권씨는 처음에 안전에게 시집갔다가 안소에게 재가했고, 다시 이원경에게 시집가는 바람에 사람들에게 음부(淫婦)라 지탄받는 여자였다. 잡힐 무렵엔 지경 상문 두 승려와 간통 중이라는 사실이 새롭게 발각돼 곤장 90대를 얻어맞는다.
이런 일도 있었다. 관찰사를 지낸 이귀산의 아내 유씨가 지신사 조서로와 간통하다가 사헌부에 적발됐다. 사건을 보고받은 세종 임금이 이렇게 한 말씀하신다. "우리 동방이 예의로 나라를 다스렸으니, 그 유래가 오래다. 대대로 벼슬에 오른 세족(勢族)의 집에선 이런 행실이 없었다. 왕명의 출납을 맡은 지신사의 임무가 무겁거늘, 죄가 강상(綱常)을 범한 것이다. 공신이라 형벌을 가할 수 없지만, 유씨는 대신의 아내로서 감히 음탕한 짓을 행했으니 크게 징계해 뒷사람을 경계하라." 그리하여 남자는 귀양 보내지고 간통녀 유씨는 3 일 간 저자에 세워졌다가 목이 베여진다.
똑같이 간통했는데 남자는 귀양 보내고 여자는 죽이다니. 아아, 성차별이 어찌 이토록 심한가. 오늘날에도 이와 별반 차이나지 않는다면 남녀차별 이데올로기가 정말 얼마나 더럽게 끈질긴지 알겠도다. 특히 강상대도(綱常大道)를 신조처럼 떠받들던 시대에 남자를 관대히 처벌함은 이율배반의 극치요 사대부의 심각한 자기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욕담의 고을 사또는 사려 깊다. 윽박질러 판결한 것도 아니고, 우격다짐으로 단죄하지도 않았다. 언어 습관을 교묘히 이용해 여자를 승복시켜 강상을 회복시키려 애썼다. 그런데 과연 아내의 그것은 아내 자신 것이 아니고 그것을 좋아하는 남편의 것인가? 그렇다면 남편의 그것 또한 아내의 것임을 전제해야 하지 않나? 아니라고? 그보다 먼저 이제 이 시대엔 남자나 여자나 결혼 생활 같은 정상적인 상태에서 섹스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따라서 모든 성차별 담론은 무의미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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