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있는 뿌리깊은 이야기
서태후 본문
중국 역사에서 여자로서 황제의 권위를 누렸던 사람은 딱 세명입니다.
유방의 마누라 여씨부인(여태후), 후궁 신분으로 여황제가 된 측천무후,
마지막 한명이 오늘의 주인공인 청나라의 서태후입니다.
후궁 출신의 약점을 딛고 끝없는 음모와 암살로 권력을 쟁취한 그녀의 일생을 소개합니다.
◆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서태후의 본명은 난아(蘭兒)로서 1852년 문종(文宗)의 후궁으로 들어가나
경쟁심 강하고 고집 센 성격 탓에 다른 궁녀들로부터 왕따를 당해 늘 외톨이입니다.
어느날 문종이 청와대 뒷뜰에 나와 어정어정 거닐다가
어디선가 발라드를 기똥차게 부르는 여인의 노래에 혼이 나가버립니다.
문종 따까리들이 목소리의 쥔공을 데려와 보니....... 김희선 뺨치는 미인 !!
하지만 이날의 만남은 난아에 의해 치밀하게 계획된 각본에 의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얌전히 순서 기다리다가 어느 천년에 황제를 만나겠습니까?
◆ 꼬우면 너도 아들 낳지?
문종의 정실부인 효정황후는 부덕을 두루 갖춘 어진 여인인데 비해
난아는 매사 적극적이며 자유분방하게 팡팡 튀는 스타일입니다.
문종은 그런 난아에게 신선한 매력을 느껴 흐물흐물 빠져버립니다.
얼마 뒤 난아는 아들을 낳고.......일약 귀비로 승진합니다.
눈에 뵈는게 없는 난아는 기고만장과 안하무인의 대명사가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실부인 효정황후는 아이를 낳지 못했으니
이제 차기 대권주자후보로 자기 아들이 유력했기 때문입니다.
◆ 엄마, 나 ....태후 먹었어.
문종이 죽자 난아의 아들(목종)이 5살의 나이로 제위에 오릅니다.
당근.....난아도 자동빵으로 태후가 됩니다..........아들덕에 팔자 핀겁니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부럽다"는 말 서태후 앞에서 했다간 주금입니다.
문종의 정실부인 효정황후는 동궁에 살고 있어서 "동태후"라 불렀고
난아는 서궁에 살고 있어서 "서태후"라고 불려집니다.
바람보다 빨리 눕고 바람보다 빨리 일어나는 권력의 가벼움이라니........
궁궐권력의 중심은 동태후에서 서태후쪽으로 급속히 기울기 시작합니다.
철새 정치인의 추잡한 생리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 배워서 남주나?
새 황제인 목종의 나이가 어려 서열1순위인 동태후가 섭정을 합니다.
동태후는 여자는 밥 잘짓고 애 잘나면 된다는 가풍아래 초등학교도 안 나온 반면
서태후는 검정고시로 학문을 익힌 끝에 안터넷 결재까지 턱턱 해댑니다.
한마디로 말해 문맹인 동태후는 골뱅이 놓고 @자도 모르는 여자입니다.
3M이라는 회사를 "삼미터회사"로 알 정도입니다.
따라서 신하들이 올리는 결재문서나 상소문등은
서태후가 모두 읽어줘야만 비로소 동태후가 결재를 하는 겁니다.
서태후는 처음 얼마동안은 국정사안을 동태후와 의논해서 결정하더니
슬슬 동태후를 깔고 뭉개 권력을 송두리째 손아귀에 넣습니다.
◆ 니가 고로케 잘났냐?
서태후의 아들 목종이 16살때 결혼을 하는데 며느리는 대단한 가문의 출신!!!
비천한 궁녀출신 서태후는 명문출신 며느리에게 컴플렉스를 느낀 나머지
매사 괜시리 들들들 볶고, 신하 앞에서 망신 주는 것도 모자라
"지나친 부부금실은 황제의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논리로 부부를 별거 시킵니다.
시름에 빠진 목종이 바람도 쐴겸 기분도 풀자고 놀러간 곳이 강남 룸싸롱.
그곳에서 O양을 만나 질퍼덕 거리다가 매독에 걸리고 마는데
당시 "광동병"이라 불리던 성병에 대해 궁중의사들은 아직 치료법을 몰랐습니다.
그 병으로 인해 목종은 18살의 한창 나이로 어이없이 죽게 됩니다.
◆ 왜 죽이냐고? 내 맘이야.
서태후는 아들이 죽자 기다렸다는 듯 티꺼웠던 며느리에게 살수를 뻗칩니다.
"목종이 병에 걸렸는데도 왜 문병 안 갔느냐"는 트집을 잡은 겁니다.
며느리가 서태후에게 "분부가 계시질않아 못 갔습니다"라고 읍소했지만
독종 서태후는 깍두기들을 시켜 며느리를 살해해버립니다.
또 허수아비 동태후에게 독약이 들은 떡을 보내 그녀조차 죽여 버립니다.
이제 천하는 완전히 그녀 손에 들어온 겁니다.
목종의 뒤를 이은 덕종(德宗)도 훗날 서태후에게 반기를 들었다 하여
10년 동안 가둬 두었다가 끝내 쓱싹 해버리고 맙니다.
◆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천하를 거머잡은 서태후의 생활은 타락과 사치의 극을 달립니다.
음경단소증(거시기가 뻔데기만한 넘)으로 내시생활을 하던 이연영, 만금쟁, 안덕해등을
정형외과에 보내 울트라 빅사이즈로 복원시켜 엄청 난잡하게 놀아 제낍니다.
한끼 식사에 주식 60가지, 반찬 128가지, 시중 450명이 동원되는데
이 비용으로 농민 일만명을 먹일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열차여행 때에는 주방차량을 4칸씩이나 연결시키는 호사를 부렸습니다.
의복상자만 3천 박스에다가 하루에도 몇번씩 옷을 바꿔 입었으며
그녀의 머리를 빗겨주던 내시들이 머리카락 한올만 떨어뜨려도 목을 뎅강합니다.
◆ 나도 산소같은 여자라구
서태후는 늙어서도 겁나게 아름다운 살결을 가진 걸로 유명한데
그 비결은 천연 모유와 호두죽에 있습니다.
서태후는 매일 젊은 애기 엄마의 젖을 빨아 먹었다고 합니다.
그럼 호두는 어떻게 해서 먹느냐?........다음과 같습니다.
① 호두 10개 정도를 열탕하여 껍질을 벗긴다.
② 백미 150g을 물에 4시간 담근 뒤 호두와 함께 간다.
③ 간 것을 체에 걸러 나온 액체에 설탕 150g넣고 물을 적당히 붓고 약한 불에 30분 끓인다.
④ 여기에 홍조(紅棗)를 섞는다.........아침 저녁으로 먹는다.
* 홍조를 넣을 때는 홍조에 설탕을 조금 넣고 열탕을 해 놨다가 섞는다.
◆ 국가야 망하건 말건
서구열강들이 계속 중국을 찝쩍대면서 야금야금 먹어 들어와도
나라야 어찌되건 말건 서태후의 사치와 방탕은 마냥 go입니다.
심지어 해군의 군함 건조비용을 유용해서 북경 제일의 공원인 "이화원"을 재건하여
전당, 누각, 정자가 도합 3천칸이나 되는 거대한 정원으로 만듭니다.
48년간 중국을 통치하던 서태후는 1908년 설사병으로 골골 앓다가 죽지만
그녀의 사치와 정치적 무능은 서방열강의 침략을 자초했고
끝내는 청일전쟁에서 대패하는 수모를 겪는 원인을 제공하게 된겁니다.
유방의 마누라 여씨부인(여태후), 후궁 신분으로 여황제가 된 측천무후,
마지막 한명이 오늘의 주인공인 청나라의 서태후입니다.
후궁 출신의 약점을 딛고 끝없는 음모와 암살로 권력을 쟁취한 그녀의 일생을 소개합니다.
◆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서태후의 본명은 난아(蘭兒)로서 1852년 문종(文宗)의 후궁으로 들어가나
경쟁심 강하고 고집 센 성격 탓에 다른 궁녀들로부터 왕따를 당해 늘 외톨이입니다.
어느날 문종이 청와대 뒷뜰에 나와 어정어정 거닐다가
어디선가 발라드를 기똥차게 부르는 여인의 노래에 혼이 나가버립니다.
문종 따까리들이 목소리의 쥔공을 데려와 보니....... 김희선 뺨치는 미인 !!
하지만 이날의 만남은 난아에 의해 치밀하게 계획된 각본에 의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얌전히 순서 기다리다가 어느 천년에 황제를 만나겠습니까?
◆ 꼬우면 너도 아들 낳지?
문종의 정실부인 효정황후는 부덕을 두루 갖춘 어진 여인인데 비해
난아는 매사 적극적이며 자유분방하게 팡팡 튀는 스타일입니다.
문종은 그런 난아에게 신선한 매력을 느껴 흐물흐물 빠져버립니다.
얼마 뒤 난아는 아들을 낳고.......일약 귀비로 승진합니다.
눈에 뵈는게 없는 난아는 기고만장과 안하무인의 대명사가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실부인 효정황후는 아이를 낳지 못했으니
이제 차기 대권주자후보로 자기 아들이 유력했기 때문입니다.
◆ 엄마, 나 ....태후 먹었어.
문종이 죽자 난아의 아들(목종)이 5살의 나이로 제위에 오릅니다.
당근.....난아도 자동빵으로 태후가 됩니다..........아들덕에 팔자 핀겁니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부럽다"는 말 서태후 앞에서 했다간 주금입니다.
문종의 정실부인 효정황후는 동궁에 살고 있어서 "동태후"라 불렀고
난아는 서궁에 살고 있어서 "서태후"라고 불려집니다.
바람보다 빨리 눕고 바람보다 빨리 일어나는 권력의 가벼움이라니........
궁궐권력의 중심은 동태후에서 서태후쪽으로 급속히 기울기 시작합니다.
철새 정치인의 추잡한 생리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 배워서 남주나?
새 황제인 목종의 나이가 어려 서열1순위인 동태후가 섭정을 합니다.
동태후는 여자는 밥 잘짓고 애 잘나면 된다는 가풍아래 초등학교도 안 나온 반면
서태후는 검정고시로 학문을 익힌 끝에 안터넷 결재까지 턱턱 해댑니다.
한마디로 말해 문맹인 동태후는 골뱅이 놓고 @자도 모르는 여자입니다.
3M이라는 회사를 "삼미터회사"로 알 정도입니다.
따라서 신하들이 올리는 결재문서나 상소문등은
서태후가 모두 읽어줘야만 비로소 동태후가 결재를 하는 겁니다.
서태후는 처음 얼마동안은 국정사안을 동태후와 의논해서 결정하더니
슬슬 동태후를 깔고 뭉개 권력을 송두리째 손아귀에 넣습니다.
◆ 니가 고로케 잘났냐?
서태후의 아들 목종이 16살때 결혼을 하는데 며느리는 대단한 가문의 출신!!!
비천한 궁녀출신 서태후는 명문출신 며느리에게 컴플렉스를 느낀 나머지
매사 괜시리 들들들 볶고, 신하 앞에서 망신 주는 것도 모자라
"지나친 부부금실은 황제의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논리로 부부를 별거 시킵니다.
시름에 빠진 목종이 바람도 쐴겸 기분도 풀자고 놀러간 곳이 강남 룸싸롱.
그곳에서 O양을 만나 질퍼덕 거리다가 매독에 걸리고 마는데
당시 "광동병"이라 불리던 성병에 대해 궁중의사들은 아직 치료법을 몰랐습니다.
그 병으로 인해 목종은 18살의 한창 나이로 어이없이 죽게 됩니다.
◆ 왜 죽이냐고? 내 맘이야.
서태후는 아들이 죽자 기다렸다는 듯 티꺼웠던 며느리에게 살수를 뻗칩니다.
"목종이 병에 걸렸는데도 왜 문병 안 갔느냐"는 트집을 잡은 겁니다.
며느리가 서태후에게 "분부가 계시질않아 못 갔습니다"라고 읍소했지만
독종 서태후는 깍두기들을 시켜 며느리를 살해해버립니다.
또 허수아비 동태후에게 독약이 들은 떡을 보내 그녀조차 죽여 버립니다.
이제 천하는 완전히 그녀 손에 들어온 겁니다.
목종의 뒤를 이은 덕종(德宗)도 훗날 서태후에게 반기를 들었다 하여
10년 동안 가둬 두었다가 끝내 쓱싹 해버리고 맙니다.
◆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천하를 거머잡은 서태후의 생활은 타락과 사치의 극을 달립니다.
음경단소증(거시기가 뻔데기만한 넘)으로 내시생활을 하던 이연영, 만금쟁, 안덕해등을
정형외과에 보내 울트라 빅사이즈로 복원시켜 엄청 난잡하게 놀아 제낍니다.
한끼 식사에 주식 60가지, 반찬 128가지, 시중 450명이 동원되는데
이 비용으로 농민 일만명을 먹일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열차여행 때에는 주방차량을 4칸씩이나 연결시키는 호사를 부렸습니다.
의복상자만 3천 박스에다가 하루에도 몇번씩 옷을 바꿔 입었으며
그녀의 머리를 빗겨주던 내시들이 머리카락 한올만 떨어뜨려도 목을 뎅강합니다.
◆ 나도 산소같은 여자라구
서태후는 늙어서도 겁나게 아름다운 살결을 가진 걸로 유명한데
그 비결은 천연 모유와 호두죽에 있습니다.
서태후는 매일 젊은 애기 엄마의 젖을 빨아 먹었다고 합니다.
그럼 호두는 어떻게 해서 먹느냐?........다음과 같습니다.
① 호두 10개 정도를 열탕하여 껍질을 벗긴다.
② 백미 150g을 물에 4시간 담근 뒤 호두와 함께 간다.
③ 간 것을 체에 걸러 나온 액체에 설탕 150g넣고 물을 적당히 붓고 약한 불에 30분 끓인다.
④ 여기에 홍조(紅棗)를 섞는다.........아침 저녁으로 먹는다.
* 홍조를 넣을 때는 홍조에 설탕을 조금 넣고 열탕을 해 놨다가 섞는다.
◆ 국가야 망하건 말건
서구열강들이 계속 중국을 찝쩍대면서 야금야금 먹어 들어와도
나라야 어찌되건 말건 서태후의 사치와 방탕은 마냥 go입니다.
심지어 해군의 군함 건조비용을 유용해서 북경 제일의 공원인 "이화원"을 재건하여
전당, 누각, 정자가 도합 3천칸이나 되는 거대한 정원으로 만듭니다.
48년간 중국을 통치하던 서태후는 1908년 설사병으로 골골 앓다가 죽지만
그녀의 사치와 정치적 무능은 서방열강의 침략을 자초했고
끝내는 청일전쟁에서 대패하는 수모를 겪는 원인을 제공하게 된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