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있는 뿌리깊은 이야기
루크레치아 본문
이탈리아 역사에는 "루크레치아"라는 유명한 여인이 두명 등장하는데
한명은 정숙하기로, 또 한명은 음란하기로 유명합니다.
우선 정숙한 루크레치아부터 소개합니다.
고대로마의 귀족 콜라티누스의 아내인 "루크레치아"는
미모와 부덕을 겸비한 로마판 신사임당입니다.
로마황제의 난봉꾼 아들인 섹스투스가
호시탐탐 그녀에게 눈독을 들이면서 일이 시작됩니다.
어느날 남편이 회원들과 골프를 치러간 사이
섹스투스는 그녀의 방에 들어와 공갈협박을 하며 회유합니다.
"나하고 한번 하자......안그러면 당신을 남자노예와 함께 죽이겠다.
그리고 소문을 내겠다.....당신이 노예와 통정하는 장면을 봤노라고.
분개한 내가 두 년놈을 한꺼번에 죽인거라고..............어때? 각본 죽이쥐?"
루크레치아는 어쩔수 없이 그에게 몸을 허락합니다.
그가 돌아간 뒤 모든 일가 친척을 소집시켜 놓고
자신의 억울함과 섹스투스의 겁탈을 소상히 알리고는
복수를 부탁하면서 칼로 자신의 목을 그어 자살하고 맙니다.
열받은 남편 콜라티누스는 골프동호회원들과 반란을 일으켜
로마황제를 필드에서 추방시키고 공화정을 세웁니다 (BC 509년)
셰익스피어도 장편서사시 "루크레치아의 능욕"에서
그녀의 비장한 죽음을 칭송해 마지 않았습니다.
다음은 음란한 루크레치아를 소개합니다.
그녀는 16세기 이탈리아의 유명한 가문 "보르지아家"의 딸내미입니다.
이 가문은 교황을 두명이나 배출한 돈많고 힘쎈 가문인데
온갖 못된 짓은 빠짐없이 했던 가문으로 아주 악명이 높습니다.
대문호 "빅톨 위고"도 보르지아家를 일컬어
"이 곳이야 말로 타기해야 할 집안, 음란의 집, 배반의 집, 모살의 집, 간통의 집, 불륜의 집,
열거할 수 없는 모든 죄악의 집"이라고 평할 정도였습니다.
이 가문의 대표선수가 "교황 알렉산더 6세"입니다.
교황의 자리를 돈으로 샀고, 성직의 매관매직, 독살, 음행, 권모술수를 일삼던 놈으로
딸내미인 "루크레치아"조차 교황권강화를 위한 정략결혼의 제물로 삼습니다.
루크레치아.........참 아름다웠다고 전해집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의 모델이 바로 그녀입니다.
뭇 남성을 매혹시켰던 그녀의 긴 금발은 얼마나 유명했던지
이탈리아 대표음식인 "파스타"중에 얇은 면발을 자랑하는 tagliatelle가
바로 그녀의 아름다운 금발을 기리기위해 만들어진거 랍니다.
그럼 지금부터 그녀의 정략결혼 남편들을 소개합니다.
결혼 과정에 얽힌 정치적 이해관계는 하두 복잡해서 지면관계상 생략합니다.
▲ 첫번째 정략 결혼 : 조반니 스포르차
성불능자로 빌빌거렸던 이넘은 신부를 만족시키지 못하자
자신의 부하인 자코미노를 시켜 대리남편역을 맡겼던 한심한 넘입니다.
그러나 성애술이 별로였던 자코미노에게 만족을 못한 루크레치아는
다시 친오빠들과의 근친상간에 탐닉하게 됩니다.
루크레치아는 어릴때부터 오빠들과 관계를 가졌었는데
오빠들중 특히 "체자레"는 �질 무척 괴팍한 놈으로서
자기의 여동생인 "루크레치아"를 다른 넘이 사랑하는 꼴을 못 보는 넘입니다.
여동생의 남편이고 뭐고 눈에 걸리적거리면 죄다 죽이려 드는 개차반입니다.
체자레의 이런 암살음모를 눈치채고 고향으로 도망간 남편 조반니는
"선데이로마"에 "교황 X파일"이라는 폭로문을 기고해 로마를 발칵 뒤집어 놓습니다.
《나는 폭로한다!!!! 교황집안의 콩가루 비밀을!!!!》
《성직자인지 뭔지 헷갈리는 교황 알렉산더 6세의 애새끼덜은
체자레, 조반니, 루크레치아, 호프레.........이로케 4명이다.
근데 이거떨은 짐승보다 더 후지게 엉켜붙은 년놈덜이다......함 볼래?
1) 교황은 지 딸내미인 루크레치아와 통정해따아.
2) 체자레, 조반니는 지 여동생 루크레치아와 몸을 섞어따아.
3) 체자레, 조반니는 지 남동생 호프레의 부인과 불륜을 저질러따아.
4) 루크레치아와의 애욕에 눈먼 체자레는 지 남동생 조반니를 살해해따아.
5) 루크레치아는 하인인 페드로와 관계했는데 체자레가 하인을 죽여따아.....》
바티칸궁에서는 그소문을 진화하느라 난리브루스를 떨고
쪽 다 팔린 루크레치아는 산속 수도원으로 피신합니다.
▲ 두번째 정략 결혼 : 알폰소
루크레치아보다 2살 연하였던 이넘과는 제법 행복하게 지냈는데
채 2년도 못돼 오빠인 체자레에게 습격당해 치명상을 입습니다.
그녀는 부상당한 남편을 정성을 다해 치료할 뿐 아니라
오빠의 또 다른 기습에 대비해 방 입구에는 경호원을 두기까지 합니다.
그러나......어느날 그녀가 건넌방의 교황 방에잠깐 다녀온 사이
체자레의 심복이 몰래 잠입해 남편을 목 졸라 죽여 버리고 맙니다.
루크레치아는 자신의 운명이 너무 한심했던지
또 산속으로 도망치듯 숨어버립니다.
여동생에게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체자레나...
그걸 용인하는 교황이나, 루크레치아나 .......참 골때리는 집안입니다.
항간에는 루크레치아와 관계를 가지면 반드시 죽는다는 소문이 퍼지게 됩니다.
즐길 남자를 찾아서 로마시내를 휘젖고 다니는 그녀 뒤에는
칼날을 휘번득이며 체자레가 거품물고 따라다녔다는 겁니다.
바티칸궁전에서 일했던 하인,노예들중에서
루크레치아와 관계를 맺었던 넘들은 예외없이 죽임을 당해
강가에서 시체로 발견되기 일쑤입니다.
여기서 잠깐 체자레 (1475-1507)에 대해 알아볼까요.
이 넘은 16세기말 이탈리아의 정치판도를 뒤 흔들었던 인물로
대담한 용기와 지략을 갖추었던 교황군의 총사령관였습니다.
제 아버지를 닮은 비상한 음모로 세력을 넓혔으며
특히 보르지아家의 독약으로 정적들을 독살시키기로 악명자자했습니다.
체자레는 강력한 교황권과 군대를 양성하여 그를 기반으로
스페인,프랑스의 간섭에서 벗어난 이탈리아를 꿈꿨는데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이넘을 이상적인 모델로 삼았을 정도입니다.
▲ 세번째 정략 결혼 : 알폰소 1세
두번째 남편과 이름이 똑 같지만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비록 정략결혼이긴 했지만 루크레치아는 이 결혼에서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찾습니다.
그녀가 시집간 페라라지역은 당시 가장 세련된 문화중심지중의 하나인데다
남편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서 궁전에는 늘 예술의 향기가 풍겼답니다.
"아.......역쉬 여자는 남편을 잘 만나야 돼"
모든게 행복할 것 같은 느낌도 잠깐.......
1503년 교황 사망, 1507년 체자레 사망등으로 그녀의 빽줄이 와장창 끊어지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냉정하게 대하게 됩니다.
이제까지는 그녀가 보르지아家 집안이라는 위세 하나만으로
아니꼽고 티꺼워도 그녀에게 고분고분 했던 사람들이
집안 몰락하자 드러내놓고 그녀에게 틱틱거리며 멸시를 하는 겁니다.
그러나 오직 남편만은 그녀를 지켜줬으며
남들이 감히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하게 막았다고 합니다.
이런 남편에게 그녀는 무한한 감사와 애정을 느끼며
1519년 39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면서 한많은 생을 마감합니다.
"루크레치아"의 극한적인 일생은 예술작품의 주요 소재가 됐는데
소설, 희곡등은 말 할것도 없이 오페라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호세 카레라스"의 데뷔곡이 바로
"루크레치아 보르지아"였다고 합니다.
또 "카푸치노 보르지아"라는 커피도 많이 알려져 있죠.
보르지아家에서 즐겨 마셨다는 이 커피는
휘핑크림을 띄우고....레몬 또는 오렌지껍질 간 것을 크림위에 올려 놓은 것이랍니다.
한명은 정숙하기로, 또 한명은 음란하기로 유명합니다.
우선 정숙한 루크레치아부터 소개합니다.
고대로마의 귀족 콜라티누스의 아내인 "루크레치아"는
미모와 부덕을 겸비한 로마판 신사임당입니다.
로마황제의 난봉꾼 아들인 섹스투스가
호시탐탐 그녀에게 눈독을 들이면서 일이 시작됩니다.
어느날 남편이 회원들과 골프를 치러간 사이
섹스투스는 그녀의 방에 들어와 공갈협박을 하며 회유합니다.
"나하고 한번 하자......안그러면 당신을 남자노예와 함께 죽이겠다.
그리고 소문을 내겠다.....당신이 노예와 통정하는 장면을 봤노라고.
분개한 내가 두 년놈을 한꺼번에 죽인거라고..............어때? 각본 죽이쥐?"
루크레치아는 어쩔수 없이 그에게 몸을 허락합니다.
그가 돌아간 뒤 모든 일가 친척을 소집시켜 놓고
자신의 억울함과 섹스투스의 겁탈을 소상히 알리고는
복수를 부탁하면서 칼로 자신의 목을 그어 자살하고 맙니다.
열받은 남편 콜라티누스는 골프동호회원들과 반란을 일으켜
로마황제를 필드에서 추방시키고 공화정을 세웁니다 (BC 509년)
셰익스피어도 장편서사시 "루크레치아의 능욕"에서
그녀의 비장한 죽음을 칭송해 마지 않았습니다.
다음은 음란한 루크레치아를 소개합니다.
그녀는 16세기 이탈리아의 유명한 가문 "보르지아家"의 딸내미입니다.
이 가문은 교황을 두명이나 배출한 돈많고 힘쎈 가문인데
온갖 못된 짓은 빠짐없이 했던 가문으로 아주 악명이 높습니다.
대문호 "빅톨 위고"도 보르지아家를 일컬어
"이 곳이야 말로 타기해야 할 집안, 음란의 집, 배반의 집, 모살의 집, 간통의 집, 불륜의 집,
열거할 수 없는 모든 죄악의 집"이라고 평할 정도였습니다.
이 가문의 대표선수가 "교황 알렉산더 6세"입니다.
교황의 자리를 돈으로 샀고, 성직의 매관매직, 독살, 음행, 권모술수를 일삼던 놈으로
딸내미인 "루크레치아"조차 교황권강화를 위한 정략결혼의 제물로 삼습니다.
루크레치아.........참 아름다웠다고 전해집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의 모델이 바로 그녀입니다.
뭇 남성을 매혹시켰던 그녀의 긴 금발은 얼마나 유명했던지
이탈리아 대표음식인 "파스타"중에 얇은 면발을 자랑하는 tagliatelle가
바로 그녀의 아름다운 금발을 기리기위해 만들어진거 랍니다.
그럼 지금부터 그녀의 정략결혼 남편들을 소개합니다.
결혼 과정에 얽힌 정치적 이해관계는 하두 복잡해서 지면관계상 생략합니다.
▲ 첫번째 정략 결혼 : 조반니 스포르차
성불능자로 빌빌거렸던 이넘은 신부를 만족시키지 못하자
자신의 부하인 자코미노를 시켜 대리남편역을 맡겼던 한심한 넘입니다.
그러나 성애술이 별로였던 자코미노에게 만족을 못한 루크레치아는
다시 친오빠들과의 근친상간에 탐닉하게 됩니다.
루크레치아는 어릴때부터 오빠들과 관계를 가졌었는데
오빠들중 특히 "체자레"는 �질 무척 괴팍한 놈으로서
자기의 여동생인 "루크레치아"를 다른 넘이 사랑하는 꼴을 못 보는 넘입니다.
여동생의 남편이고 뭐고 눈에 걸리적거리면 죄다 죽이려 드는 개차반입니다.
체자레의 이런 암살음모를 눈치채고 고향으로 도망간 남편 조반니는
"선데이로마"에 "교황 X파일"이라는 폭로문을 기고해 로마를 발칵 뒤집어 놓습니다.
《나는 폭로한다!!!! 교황집안의 콩가루 비밀을!!!!》
《성직자인지 뭔지 헷갈리는 교황 알렉산더 6세의 애새끼덜은
체자레, 조반니, 루크레치아, 호프레.........이로케 4명이다.
근데 이거떨은 짐승보다 더 후지게 엉켜붙은 년놈덜이다......함 볼래?
1) 교황은 지 딸내미인 루크레치아와 통정해따아.
2) 체자레, 조반니는 지 여동생 루크레치아와 몸을 섞어따아.
3) 체자레, 조반니는 지 남동생 호프레의 부인과 불륜을 저질러따아.
4) 루크레치아와의 애욕에 눈먼 체자레는 지 남동생 조반니를 살해해따아.
5) 루크레치아는 하인인 페드로와 관계했는데 체자레가 하인을 죽여따아.....》
바티칸궁에서는 그소문을 진화하느라 난리브루스를 떨고
쪽 다 팔린 루크레치아는 산속 수도원으로 피신합니다.
▲ 두번째 정략 결혼 : 알폰소
루크레치아보다 2살 연하였던 이넘과는 제법 행복하게 지냈는데
채 2년도 못돼 오빠인 체자레에게 습격당해 치명상을 입습니다.
그녀는 부상당한 남편을 정성을 다해 치료할 뿐 아니라
오빠의 또 다른 기습에 대비해 방 입구에는 경호원을 두기까지 합니다.
그러나......어느날 그녀가 건넌방의 교황 방에잠깐 다녀온 사이
체자레의 심복이 몰래 잠입해 남편을 목 졸라 죽여 버리고 맙니다.
루크레치아는 자신의 운명이 너무 한심했던지
또 산속으로 도망치듯 숨어버립니다.
여동생에게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체자레나...
그걸 용인하는 교황이나, 루크레치아나 .......참 골때리는 집안입니다.
항간에는 루크레치아와 관계를 가지면 반드시 죽는다는 소문이 퍼지게 됩니다.
즐길 남자를 찾아서 로마시내를 휘젖고 다니는 그녀 뒤에는
칼날을 휘번득이며 체자레가 거품물고 따라다녔다는 겁니다.
바티칸궁전에서 일했던 하인,노예들중에서
루크레치아와 관계를 맺었던 넘들은 예외없이 죽임을 당해
강가에서 시체로 발견되기 일쑤입니다.
여기서 잠깐 체자레 (1475-1507)에 대해 알아볼까요.
이 넘은 16세기말 이탈리아의 정치판도를 뒤 흔들었던 인물로
대담한 용기와 지략을 갖추었던 교황군의 총사령관였습니다.
제 아버지를 닮은 비상한 음모로 세력을 넓혔으며
특히 보르지아家의 독약으로 정적들을 독살시키기로 악명자자했습니다.
체자레는 강력한 교황권과 군대를 양성하여 그를 기반으로
스페인,프랑스의 간섭에서 벗어난 이탈리아를 꿈꿨는데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이넘을 이상적인 모델로 삼았을 정도입니다.
▲ 세번째 정략 결혼 : 알폰소 1세
두번째 남편과 이름이 똑 같지만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비록 정략결혼이긴 했지만 루크레치아는 이 결혼에서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찾습니다.
그녀가 시집간 페라라지역은 당시 가장 세련된 문화중심지중의 하나인데다
남편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서 궁전에는 늘 예술의 향기가 풍겼답니다.
"아.......역쉬 여자는 남편을 잘 만나야 돼"
모든게 행복할 것 같은 느낌도 잠깐.......
1503년 교황 사망, 1507년 체자레 사망등으로 그녀의 빽줄이 와장창 끊어지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냉정하게 대하게 됩니다.
이제까지는 그녀가 보르지아家 집안이라는 위세 하나만으로
아니꼽고 티꺼워도 그녀에게 고분고분 했던 사람들이
집안 몰락하자 드러내놓고 그녀에게 틱틱거리며 멸시를 하는 겁니다.
그러나 오직 남편만은 그녀를 지켜줬으며
남들이 감히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하게 막았다고 합니다.
이런 남편에게 그녀는 무한한 감사와 애정을 느끼며
1519년 39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면서 한많은 생을 마감합니다.
"루크레치아"의 극한적인 일생은 예술작품의 주요 소재가 됐는데
소설, 희곡등은 말 할것도 없이 오페라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호세 카레라스"의 데뷔곡이 바로
"루크레치아 보르지아"였다고 합니다.
또 "카푸치노 보르지아"라는 커피도 많이 알려져 있죠.
보르지아家에서 즐겨 마셨다는 이 커피는
휘핑크림을 띄우고....레몬 또는 오렌지껍질 간 것을 크림위에 올려 놓은 것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