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있는 뿌리깊은 이야기
조반나 본문
역대 교황은 모두 남자입니다.
그런데 단 한사람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조반나(요한나)8세"입니다.
그 교황은 해괴망측하게도.......... 여자입니다.
허걱....도대체 워떠케 여자가 교황이 될수 있냐?
고거이 알고 싶다.
때는 9세기.... 중세 암흑시대의 일입니다.
어렸을 때 양친을 잃은 고아 "조반나(女)"는 수도원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에서 미남 수도사 "프르멘치오"를 만나 그만 사랑에 빠집니다.
이 둘은 불타오르는 사랑을 감출 길 없어 야반도주를 감행.......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 아테네에 도착합니다.
남자로 변장한 "조반나"와 "프르멘치오"는 아테네의 승원에 몸을 의탁하게 됩니다.
남달리 머리가 영특한 "조반나"는 그곳에서 열심히 학문에 정진하여
초기 기독교 학자 및 그리스철학자들의 책을 두루 섭렵한 결과
지식수준이 겁나게 높은 성직자로 명성이 짜잔하게 퍼집니다.
아테네의 고위 성직자 및 고위관료들도 "조반나"를 찾아와
즐겨 담소를 하고 깊은 종교적 토론을 하게되면서
그녀의 박식함은 "도올 김용옥"만큼이나 유명세를 탑니다.
물론 그 누구도 그녀가 여자인 줄 몰랐다고 합니다.
자신감을 얻은 "조반나'는 홀로 로마로 갑니다.
그곳에서 운좋게 교황 레오4세를 알현하게 되는데
교황도 그녀의 박학다식에 그만 입이 쩍 벌어지도록 감복하여
기부금도 안받고 그녀를 성 마루티노학원의 신학교수로 임명합니다.
그 학원은 성 아우구스티누스도 가르친 적 있다는 명문 8학군 소속입니다.
"조반나"의 강의는 "서한샘"선생의 족집게 강의 만큼이나 호평을 얻어
강의실에는 항상 학생들이 넘쳐 셔틀버스까지 운행했답니다.
심지어는 교황까지도 강의를 들으러 올 정도로 명강의였답니다.
얼마 뒤 교황은 "조반나'를 교황청의 특별사설비서로 임명하는데
일이 되느라고 그랬는지는 몰라도
얼마 후 교황이 노환으로 세상을 뜨게 되고 새교황으로 "조반나"가 선출됩니다.
9세기에는 추기경회의를 열고 선거로 교황 선출하는 제도가 없었습니다.
우선 당시는 추기경이라는 지위 자체가 없었던 거죠.
교황이 되기 위해서는 성직자들의 추천만 많이 얻으면 됐었는데
"조반나"는 성직자 및 학생제자들의 강력한 선전 및 추천으로 교황이 된겁니다.
.
.
.
.
참고로 교황의 선출 역사를 간단히 훑어보면....
초대 교황 베드로는 그리스도에 의해 직접 지명됐었고,
3세기에는 지방성직자와 민중들에 의해 선출됐으며,
4세기부터는 로마황제, 귀족, 왕등이 선거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었고,
9 ~ 11세기까지는 로마귀족과 왕들이 교황임명, 해임의 결정적 권한을 가졌습니다.
추기경에 의한 선거제도는 1509년에 니콜라오 2세가 제정한 것으로
교황선거에 속인의 간섭을 완전 제거한 획기적인 조치로 평가받습니다.
그러나 이에 따른 해악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외부의 간섭이 없다보니 일부 성직자들의 타락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던 겁니다.
그러다보니 교황인지 또라이인지 분간할 수 없는 족속도 나옵니다.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1235-1303)가 그 대표적인 놈입니다.
이놈이 내뱉은 주장을 보면 한심하다 못해 기가 막힙니다.
『지옥과 천국은 내세가 아닌 이 세상에 있다.
노쇠, 가난, 성불능이 지옥이며.....젊음,건강,미녀가 천국이다.』
『예수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
자신조차 구할 수 없었던 그가 어떻게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단 말인가?』
이 정도는 그래도 아주 점잖은 양반축에 듭니다.
더 개떡같이 놀아난 교황이 있습니다.
교황 "알렉산더 6세"(1431-1503)
이놈의 끝간데 모를 음란, 퇴폐, 교활, 잔인은 필설로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특히 1501년 10월 30일에 거행한 난교파티와 성교 콘테스트는 악명 높은데,
당시 교황 의전장관이던 "요한 부르카"주교가 적은 기록을 보면....
『10월 30일 바티칸 궁전에서 연회가 열리다.
로마에서 가장 음란한 창부 50명을 선발해 연회에 초대하다.
그녀들을 나체로 벗기고, 손에 양초를 들게한 뒤, 밤줍기 놀이를 벌이다.
교황, 체자레(교황아들), 루크레지아(교황딸)도 이 모습 보고 박장대소하다.
음탕한 분위기가 무르익자 참석한 남녀들이 엉켜 난교가 진행되다.
누가 더 많은 여인들과 성교를 하는지 내기도 벌어지다.
흥분한 "루크레지아(교황딸)"가 옷을 벗고 뛰어 들다.
"체자레(교황아들)"도 나체가 돼 참석하여 "루크레지아"와 살을 섞다』
교황의 아들 딸이 애비보는 앞에서 근친상간을 한겁니다.
"보르지아家"출신인 알렉산더 6세는 돈으로 교황직을 산 놈인데
이노무 "보르지아家"의 음학(淫虐)은 하도 유명해서
알레산더 뒤마, 빅톨 위고등에 의해 소설, 희곡으로도 씌어졌고
최근에는 "보르지아家의 독약"이라는 영화로도 널리 알려진 바 있습니다.
.
.
.
.
이거 얘기가 한참 옆길로 샜습니다.....
아무튼 여자 "조반나"는 교황이 됐습니다.
그리고 2년 반 동안 그럭저럭 훌륭한 치세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황 "조반나"가 35살이 되던해
자꾸 뭔가가 그리워지고 밤이 괜시리 길어지는 걸 느낀 겁니다.
여자나이 35살........이거 뭇남성을 겁나게 만드는 나이 아닙니까?
교황청의 시종인 "파오르"라는 애리애리하고 섹쉬한 넘이 있었는데
나이는 스무살...... 쇠도 녹이고 젖은 수건 4장도 끄떡없다는 그 나이!!
조반나는 침을 쥘쥘 흘리면서 그넘과 살을 섞었다지 뭡니까.
게다가 덜커덕 임신을 했다지 뭡니까.
그러다가.........교황"조반나"가 미사를 진행하던 어느날
갑자기 아랫배에서 심한 진통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걸 느끼는 순간
"으앙---"하고 갓난아기를 낳고 만겁니다.
순식간에 사원은 그야말로 대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조반나"의 그 후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를 대단히 불명예스럽게 여긴 교황 "클레멘스 8세"는
1601년 "조반나"에 관한 모든 기록을 완전히 말살토록 지시했다고 합니다.
16 ~17세기 프로테스탄트의 논쟁재료가 됐었던 女교황 조반나 사건은
1647년 캘빈파의 D.브론델에 의해 사실이 아닌 걸로 판명됐습니다만
교황史를 얘기할때면 그 진위를 놓고 아직도 논란이 뒤 따르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조반나"의 사건이래로 교황 선거때에는 희한한 절차가 생겨 났으니
"구멍을 뚫은 의자"에 교황 후보자를 앉히는 절차가 바로 그겁니다.
선관위 관계자가 의자아래에서 구멍으로 손을 넣어
후보자의 "물건"을 확인 하는 거죠..................쩝!
그런데 단 한사람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조반나(요한나)8세"입니다.
그 교황은 해괴망측하게도.......... 여자입니다.
허걱....도대체 워떠케 여자가 교황이 될수 있냐?
고거이 알고 싶다.
때는 9세기.... 중세 암흑시대의 일입니다.
어렸을 때 양친을 잃은 고아 "조반나(女)"는 수도원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에서 미남 수도사 "프르멘치오"를 만나 그만 사랑에 빠집니다.
이 둘은 불타오르는 사랑을 감출 길 없어 야반도주를 감행.......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 아테네에 도착합니다.
남자로 변장한 "조반나"와 "프르멘치오"는 아테네의 승원에 몸을 의탁하게 됩니다.
남달리 머리가 영특한 "조반나"는 그곳에서 열심히 학문에 정진하여
초기 기독교 학자 및 그리스철학자들의 책을 두루 섭렵한 결과
지식수준이 겁나게 높은 성직자로 명성이 짜잔하게 퍼집니다.
아테네의 고위 성직자 및 고위관료들도 "조반나"를 찾아와
즐겨 담소를 하고 깊은 종교적 토론을 하게되면서
그녀의 박식함은 "도올 김용옥"만큼이나 유명세를 탑니다.
물론 그 누구도 그녀가 여자인 줄 몰랐다고 합니다.
자신감을 얻은 "조반나'는 홀로 로마로 갑니다.
그곳에서 운좋게 교황 레오4세를 알현하게 되는데
교황도 그녀의 박학다식에 그만 입이 쩍 벌어지도록 감복하여
기부금도 안받고 그녀를 성 마루티노학원의 신학교수로 임명합니다.
그 학원은 성 아우구스티누스도 가르친 적 있다는 명문 8학군 소속입니다.
"조반나"의 강의는 "서한샘"선생의 족집게 강의 만큼이나 호평을 얻어
강의실에는 항상 학생들이 넘쳐 셔틀버스까지 운행했답니다.
심지어는 교황까지도 강의를 들으러 올 정도로 명강의였답니다.
얼마 뒤 교황은 "조반나'를 교황청의 특별사설비서로 임명하는데
일이 되느라고 그랬는지는 몰라도
얼마 후 교황이 노환으로 세상을 뜨게 되고 새교황으로 "조반나"가 선출됩니다.
9세기에는 추기경회의를 열고 선거로 교황 선출하는 제도가 없었습니다.
우선 당시는 추기경이라는 지위 자체가 없었던 거죠.
교황이 되기 위해서는 성직자들의 추천만 많이 얻으면 됐었는데
"조반나"는 성직자 및 학생제자들의 강력한 선전 및 추천으로 교황이 된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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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교황의 선출 역사를 간단히 훑어보면....
초대 교황 베드로는 그리스도에 의해 직접 지명됐었고,
3세기에는 지방성직자와 민중들에 의해 선출됐으며,
4세기부터는 로마황제, 귀족, 왕등이 선거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었고,
9 ~ 11세기까지는 로마귀족과 왕들이 교황임명, 해임의 결정적 권한을 가졌습니다.
추기경에 의한 선거제도는 1509년에 니콜라오 2세가 제정한 것으로
교황선거에 속인의 간섭을 완전 제거한 획기적인 조치로 평가받습니다.
그러나 이에 따른 해악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외부의 간섭이 없다보니 일부 성직자들의 타락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던 겁니다.
그러다보니 교황인지 또라이인지 분간할 수 없는 족속도 나옵니다.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1235-1303)가 그 대표적인 놈입니다.
이놈이 내뱉은 주장을 보면 한심하다 못해 기가 막힙니다.
『지옥과 천국은 내세가 아닌 이 세상에 있다.
노쇠, 가난, 성불능이 지옥이며.....젊음,건강,미녀가 천국이다.』
『예수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
자신조차 구할 수 없었던 그가 어떻게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단 말인가?』
이 정도는 그래도 아주 점잖은 양반축에 듭니다.
더 개떡같이 놀아난 교황이 있습니다.
교황 "알렉산더 6세"(1431-1503)
이놈의 끝간데 모를 음란, 퇴폐, 교활, 잔인은 필설로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특히 1501년 10월 30일에 거행한 난교파티와 성교 콘테스트는 악명 높은데,
당시 교황 의전장관이던 "요한 부르카"주교가 적은 기록을 보면....
『10월 30일 바티칸 궁전에서 연회가 열리다.
로마에서 가장 음란한 창부 50명을 선발해 연회에 초대하다.
그녀들을 나체로 벗기고, 손에 양초를 들게한 뒤, 밤줍기 놀이를 벌이다.
교황, 체자레(교황아들), 루크레지아(교황딸)도 이 모습 보고 박장대소하다.
음탕한 분위기가 무르익자 참석한 남녀들이 엉켜 난교가 진행되다.
누가 더 많은 여인들과 성교를 하는지 내기도 벌어지다.
흥분한 "루크레지아(교황딸)"가 옷을 벗고 뛰어 들다.
"체자레(교황아들)"도 나체가 돼 참석하여 "루크레지아"와 살을 섞다』
교황의 아들 딸이 애비보는 앞에서 근친상간을 한겁니다.
"보르지아家"출신인 알렉산더 6세는 돈으로 교황직을 산 놈인데
이노무 "보르지아家"의 음학(淫虐)은 하도 유명해서
알레산더 뒤마, 빅톨 위고등에 의해 소설, 희곡으로도 씌어졌고
최근에는 "보르지아家의 독약"이라는 영화로도 널리 알려진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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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얘기가 한참 옆길로 샜습니다.....
아무튼 여자 "조반나"는 교황이 됐습니다.
그리고 2년 반 동안 그럭저럭 훌륭한 치세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황 "조반나"가 35살이 되던해
자꾸 뭔가가 그리워지고 밤이 괜시리 길어지는 걸 느낀 겁니다.
여자나이 35살........이거 뭇남성을 겁나게 만드는 나이 아닙니까?
교황청의 시종인 "파오르"라는 애리애리하고 섹쉬한 넘이 있었는데
나이는 스무살...... 쇠도 녹이고 젖은 수건 4장도 끄떡없다는 그 나이!!
조반나는 침을 쥘쥘 흘리면서 그넘과 살을 섞었다지 뭡니까.
게다가 덜커덕 임신을 했다지 뭡니까.
그러다가.........교황"조반나"가 미사를 진행하던 어느날
갑자기 아랫배에서 심한 진통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걸 느끼는 순간
"으앙---"하고 갓난아기를 낳고 만겁니다.
순식간에 사원은 그야말로 대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조반나"의 그 후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를 대단히 불명예스럽게 여긴 교황 "클레멘스 8세"는
1601년 "조반나"에 관한 모든 기록을 완전히 말살토록 지시했다고 합니다.
16 ~17세기 프로테스탄트의 논쟁재료가 됐었던 女교황 조반나 사건은
1647년 캘빈파의 D.브론델에 의해 사실이 아닌 걸로 판명됐습니다만
교황史를 얘기할때면 그 진위를 놓고 아직도 논란이 뒤 따르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조반나"의 사건이래로 교황 선거때에는 희한한 절차가 생겨 났으니
"구멍을 뚫은 의자"에 교황 후보자를 앉히는 절차가 바로 그겁니다.
선관위 관계자가 의자아래에서 구멍으로 손을 넣어
후보자의 "물건"을 확인 하는 거죠..................쩝!